아이들과 함께 야외활동을 하다 보면 금세 목이 따끔거린다.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은 “당진에 오면 공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얼마 전 제주도를 다녀온 한 시민은 “창문 너머로 서해대교가 내려다보일 즈음 흰 구름 사이사이에 누런 띠가 넓게 퍼져 있었다”면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실감했단다.

사람들이 하나 둘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조용한 살인자’라고 불리는 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때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영향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자료들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주요 요인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꼽혔다. 전국 대기오염물질 다량 배출업체 중 1위부터 4위가 석탄화력발전소(△삼천포화력 △태안화력 △보령화력 △당진화력)다. 그 중 3곳이 충남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당진시민들이 뿔났다. 당진화력발전소에 이어 SK가스가 추진 중인 당진에코파워가 석문면 교로리 왜목마을 인근에 또 건설될 계획이다.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다며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뜨겁게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한여름 무더위도, 아스팔트 바닥의 복사열도 당진시민들의 분노보다 뜨겁진 않았다.

지난 19일 오전 9시, 당진시 송전선로·석탄화력 저지 범시민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김현기·이명주, 이하 대책위)를 비롯한 당진시민들이 당진시의회 앞에 모였다. 성난 시민들을 가득 실은 버스 23대가 줄지어 정부 세종청사를 향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앞에 도착한 시민들은 “주민이 죽어간다! 석탄화력 중단하라!”, “석탄화력 집중화하는 산자부 각성하라!” 등 당진에코파워 건설 백지화를 주장하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었다.

“당진시민 무시하는 정부”

신평농협 풍물패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며 장단을 맞췄다. 시민들은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 김현기 상임위원장은 “더 이상의 석탄화력발전소 추가 건설은 당진시민을 개와 돼지로 보는 것”이라며 “석탄화력발전소가 추가 건설될 경우 대기오염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주 상임위원장은 규탄문을 통해 “당진지역 석탄화력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진에코파워 전원개발 실시계획승인을 반려하고 건설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홍장 당진시장은 “당진의 환경과 시민들의 건강 및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 요구한다”며 “지난 30년 간 당진시민들은 많은 양의 미세먼지가 배출되는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묵묵히 인내하며 협조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발전소가 아니라 아름다운 고장을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주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당진시민을 대표해 어기구 국회의원 및 김홍장 당진시장, 이종윤 당진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들이 석탄화력발전소와 송전탑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또한 정미면 신시리와 사관리, 석문면 교로리 등 주민들의 피해사례를 발표했다.

“일주일 내 연락 주겠다”

한편 이날 어기구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책위 임원 등 시민 대표단이 산업통상자원부 담당자를 찾아가 주민들의 요구안을 전달했다. 이들은 당진에코파워 건설 여부에 대해 계속해서 물었다. 이 과정에서 어기구 의원은 “당진시민들이 얼마나 피해를 봐야 하냐”며 소리쳤으며, 김현기 상임위원장은 “발전소와 송전선로 피해가 없으면 본인들이 직접 지역에서 살아보라”고 말했다. 이에 담당자는 “법적인 부분을 검토 중이어서 답변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일주일 내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책위 관계자들은 광화문 광장으로 올라가 다음날 자정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어기구 국회의원

“아름다웠던 당진은 이제 새까만 분진과 미세먼지 등 수많은 환경오염물질로 오염돼 시민들을 애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당진시민을 철저히 속여왔습니다. 더 이상 당진시민의 재산권, 생존권, 목숨을 담보로 한 석탄화력발전소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종윤 시의장

“전원개발촉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국회와 정부에 수차례 건의해 왔으나, 당진시민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의 테두리 속에서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지만 정부는 전원개발촉진법을 방패 삼아 석탄화력발전소를 무분별하게 건설해 왔습니다. 앞으로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합니다.”

황성렬 집행위원장

“당진시민, 당진시장, 당진시의회, 충남도지사, 충남도의회 전체가 당진에코파워 건설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답변을 주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입니까? 정부에서는 당진시민이 지칠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들은 끝까지 힘을 내야 합니다.”

박덕환 씨(원당동·70)

“당진시민의 한 사람으로 당진의 환경오염이 걱정돼 이번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정부의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미세먼지를 먹으면서 살고 있어요. 석탄화력발전소가 증설되면 이제 어떻게 살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장태순 씨(용연1통·69)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어요. 알고 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당진에코파워 전원개발 실시계획 승인을 반려할 때까지 투쟁하겠습니다.”

김형점 씨(송산면 가곡리·67)

“현대제철 인근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환경오염으로 당진시민들은 굉장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암으로 투병 중인데, 환경 문제가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대기오염을 더 심각하게 하는 당진에코파워는 절대 건설되면 안 됩니다.”

안석환 씨(송악읍 반촌리·80)

“나쁜 것을 알았으니 반드시 투쟁해야 합니다. 무더운 날씨이지만 당진에코파워 건설이 추진되서는 안 될 것 같아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증설 계획이 백지화 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