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지역을 위해 일할 젊은 일꾼이 없다
여러 지역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왜 당진은 항상 늦느냐”는 개탄의 소리도 함께 흘러 나오곤 한다
이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지역사회의 리더쉽 문제를 질타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지역을 위해 일할 젊은 일꾼이 없다. 지방화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역의 학부모들은 더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대도시로 자녀를 보내고 외지에 나가 성공한 사람이 지역을 빛낸 인물로 추앙받는다.
지역에 남아 묵묵히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그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지역사회의 두터운 보수기득권층의 벽에 부딪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때론 발전적인 비판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문제세력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젊은세대들은 설 자리를 잃고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주도해야 할 대부분의 30~40대들은 지역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이에 대항한다. ‘나서서 욕먹을 일 없다’는 표현은 이러한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7주년을 맞아 지역사회의 리더쉽 부재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여러 지역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왜 당진은 항상 늦느냐’는 개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원인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리더쉽의 문제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재를 키우지 않는 지역사회의 보수적 성향이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단해 보았다.
편집자주
‘젊은 피’ 수혈 요원한 지역사회
16대 국회의원선거를 1년여 앞두고 있던 1999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젊은 피’ 수혈론은 당시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차기대권주자를 의미한다느니, 여당내 국회의원 출마후보자들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느니 그 ‘말씀’의 배경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지만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주창해오던 신진세력들에겐 비록 젊은 피 수혈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허다한 게 현실이었지만 시도자체는 큰 기대를 갖게 했다.
세대교체의 필요성은 비단 중앙정치권에서만 제기되어온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지역사회에서도 각 분야의 세대교체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세대교체는 단순히 연령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 권위주의적인 과거의 잔재에 물들지 않고 합리성 보편성에 기반한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신사고를 지닌 세력들이 지도층 각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게 지역의 현실이다. 여전히 지역의 정치풍토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의 봉건적인 틀 속에 묶여 있으며 이러한 틀을 기반으로 권좌에 오른 이들은 수십년간 지역사회의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으면서 지역의 정책결정과 이익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때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지역 전체의 이익을 외면하기도 하며 지역의 미래나 몸담고 있는 조직의 장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기득권 수호를 위한 자리보전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다못해 봉사단체의 ‘장’자리마저 정치권 진출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있는 인사들이 십수년간 독점하고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심없이 지역을 위해 봉사할 의지를 가진 젊은세대들은 뜻은 있어도 그 뜻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의 차단은 곧 체념과 무관심, 냉소주의를 불러온다.
“당진은 왜 항상 뒷북인가”
지난 10여년간 당진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80년대 후반 서해안시대라는 구호와 더불어 한보의 1백만평 매립공사를 필두로 개발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천혜의 어장이었던 갯벌이 공단부지로 바뀌면서 어업보상문제, 환경문제 등으로 지역사회는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 논란의 핵심은 언제나 환경이냐 개발이익이냐 였으며 지역의 이익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판이한 결론이 나오곤 했다.
그러나 애시당초 지역에 선택권이 없었던 근본적인 한계는 개발이익을 극대화시키자는 합의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환경을 희생시킨 상처를 보상할만큼 개발의 이익을 제대로 찾고 있는가. 평가의 싯점에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격랑의 90년대를 보낸 주민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단편적인 실례가 바로 당진항 문제다. 갯벌을 메워 조성된 공단에 수만톤 급의 배가 접안할 수 있는 부두시설이 지어졌지만 이에 따른 개발이익을 당진은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 당진의 항만은 현재 평택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촌로들 조차 “배는 당진으로 들어오는데 세금은 경기도로 간다더라”며 개탄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이 현안으로 부상한지 2년이 다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민들의 체증을 뚫어 줄만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왜 이럴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주민들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위정자들을 비롯한 지역사회 지도층의 지도력 부재를 원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조직과 집단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뒷북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지역사회의 지도층을 평가한다. 그러나 지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는지, 지역의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할 능력이 있는지 등의 합리적인 기준보다 혈연과 지연, 누가 많이 얼굴이 알려져 있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온 풍토속에서 선거라는 절차가 진정한 평가의 장이 되어왔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나 자질보다 일찌감치 영향력있는 정치권에 줄을 댄 인사들이 수십여년간 지도층에 진출해온 현실, 그리고 ‘공인’을 선택할 때 사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유권자들의 ‘습관’이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평가는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소신있는 젊은 군의원에게 씌워진 굴레
그러나 어렵게 이런 풍토를 깨고 제도권에 진출했더라도 보수기득권층의 벽에 부딪혀 제대로 뜻을 펴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합덕출신의 현상익(42세) 전 군의원은 지난 93년 김성환 전 군의회 부의장이 재직중 작고해 보궐선거를 통해 군의회에 입성했다. 당시 서른다섯살. 군의회 개원이래 현재까지도 최연소 군의원으로 기록되고 있는 그는 특유의 소신과 패기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주민계도지로 군예산 4천만원을 들여 서울신문을 구독하던 문제를 비롯, 관변단체 지원문제 등 비교적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역내 일부 유지들이 관과 밀착돼 이권을 챙기는 토착비리문제에도 가차없이 메스를 가했던 그는 그러나 군의원으로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기 보다 ‘건방지다’는 이미지의 굴레가 먼저 씌워졌다. 그는 95년 재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으며 이후 선거엔 출마하지 않았다.
“군의원으로 일할 때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바로 ‘관례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관례는 관례가 아닌 악습이며 주민을 위해 과감히 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의정활동 역시 그 부분에 집중됐다.”
관례를 깨는 일은 확고한 소신과 정책적 대안없이는 어렵다. 현상익 전 의원은 “그렇기 때문에 새롭고 기존질서에 비판적인 사고를 지닌 세대들이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며 “더이상 할게 없어, 혹은 자신의 개인적인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의회에 진출하는 인사들이 있는 한 주민들에겐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조직은 젊어야 한다”
명예로운 퇴임 선택한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워 자리보전에 급급하기 보다 후진을 위해 과감히 물러난 몇몇 인사들의 명예로운 퇴임은 ‘물러나지 않는’ 풍토가 만연돼 있는 우리 지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성의 전 면천우체국장은 3년 연장이 가능했던 국장자리를 마다하고 “조직은 젊어야 한다”면서 지난 97년 명예퇴임했다.
“제가 만약 3년을 연장했을 경우 뒤에 오는 사람도 3년이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조직자체가 3년이 늙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의 경륜이란 제가 물러남으로 해서 없어지는게 아니라 후배들에 의해 한단계 발전하는 밑거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퇴임하면서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는 특히 주민의 공복이어야 하는 공직자는 “물러날 때를 잘 알아야 한다”며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평소 관심분야였던 출판사업과 향토사 연구, 글쓰기 등으로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다.
또 한사람, 지금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이인근 전 농촌지도소장이다.
공직에 있을 때 온화한 성품과 업무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후배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던 그는 구조조정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지난 97년 정년을 4년 앞두고 물러났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에 대기발령을 받아야 했던 후배들을 보면서 공직에 먼저 발디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며 “내가 아니더라도 내 역할을 얼마든지 대신할 유능한 젊은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퇴임의 배경을 설명했었다.
“내가 없으면 시원찮게 일할 것이라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어려울거라는 생각은 역시 노파심이었습니다. 준공식날 가서 보니 제가 있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더군요.”
이 전소장은 현재 제주도에서 두릅농사를 지으며 주말마다 ‘오름’에 오른다고 한다.
“지역위해 일하는 사람 키우는
풍토 만들어야”
지역사회 인물부재의 원인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교육부의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맞서 ‘작은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어오고 있던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는 “이제 지역사회는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그 지역에서 키우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며 “지역 교육환경의 개선과 교육내용의 지역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 제도, 자본의 확보가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지역사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있다. 현재 지역사회의 인재 고갈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을 떠난 인재들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인물부재로 자본이 들어와도 관리가 안돼고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되고 있지만 그 제도를 충분히 활용할 리더쉽이 없다. 때문에 지역사회를 재건하는 과제는 항상 겉돌고 있다.”
장 교수는 지역에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의 문제부터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도시 못지않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외지로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욕구를 지역에서 충족시키는 한편, 감수성이 예민한 초·중등 시절에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교육하는 데에 지역사회 공동의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 고향에 돌아와서 일하는 것이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로 생각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지역사회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외지에 나가 성공한 사람을 지역을 빛낸 인물로 인식하는 반면, 지역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깎아내리는 잘못된 시각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며 “지역사회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키우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대사가 원활한 지역사회를 위해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사회는 보수와 진보 둘 모두를 요구한다. 안정과 변화가 적절하게 결합된 사회를 만들려면 보수와 진보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정체를 벗어나는 길은 정치적·사회적 의사결정권이 지나치게 노년층에 치우쳐 있는 불균형을 시정해 나가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역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조직과 지역, 원활한 신진대사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경쟁의 대열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역대 국회의원
제헌 국회의원(1948) : 김용재(대한독립촉성국민회, 당진 채운리)
제 2대 국회의원 : 구을회(무소속, 송악 반촌리)
제 3대 국회의원 : 인태식(자유당, 서울 마포)
제 4대 국회의원 : 당진 갑구 인태식(자유당), 당진 을구 원용석(자유당)
제 5대 국회의원(민의원) : 당진갑구 이규영(민주당, 서울 종로), 당진을구 박준선(민주당, 인천 송학동)
제 6대 국회의원 : 인태식(민주공화당)
제 7대 국회의원 : 김두현(민주공화당)
제 8대 국회의원 : 유제연(신민당, 신평중 이사장)
제 9대 국회의원 : 유제연(신민당), 한영수(무소속)
제10대 국회의원 : 심현직(공화당), 한영수(신민당)
제11대 국회의원 : 김현욱(민주정의당), 한영수(서산)
제12대 국회의원 : 김현욱(민정당), 장기욱(민주한국당)
제13대 국회의원 : 김현욱(민정당)
제14대 국회의원 : 송영진(통일국민당)
제15대 국회의원 : 김현욱(자민련)
제16대 국회의원 : 송영진(민주당)
■민선자치단체장
당진군수
35·36대 : 김낙성(1995~현재)
충남도의회 의원
당진군의회 의원
■주요기관 단체장 연혁
▲당진군 개발위원회(1989년 창립)
초대 : 안재곤(1989~1990)
2대 : 김종문(1990~1995)
3대 : 이홍근(1995~1999)
4대 : 박우영(2000.5~현재)
▲당진문화원
초대 : 박동규(1955~1973)
2대 : 김석제(1973~1993)
3대 : 문무겸(1993~1994)
4대 : 민영근(1994~현재)
▲상록문화제 집행위원회
1대 : 김석제(1977)
2~5대 : 김상현(1978~1981)
6~7대 : 박승선(1982~1983)
8~10대 : 김상현(1984~1986)
11~12대 : 안재곤(1987~1988)
13~17대 : 류지환(1989~1993)
18~19대 : 이홍근(1994~1995)
20~23대 : 안승환(1996~1999)
24대 : 황규호(2000~현재)
■협동조합
▲당진축협
1대 : 안병갑(1958~1961)
2~8대 : 이창구(1961~1982)
9~10대 : 이종덕(1982~1988)
11대 : 임천묵(1988.4~1988.8)
12~13대 : 김영태(1988~1993)
14~15대 : 최은범(1993~현재)
▲당진수협(1962년 설립)
1~2대 : 김연수
3~7대 : 김동원
8~11대 : 유재천
12~13대 : 강복만(1996~현재)
■협동조합
▲당진농협(1972년 설립)
1~3대 : 김관서(1972~1980)
4대 : 차운회(1981~1984)
5~6대 : 이긍수(1984~1989)
7대 : 호병옥(1989~1994)
8~9대 : 장석순(1994~현재)
▲합덕농협(1969년 설립)
초대 : 이치용(1969~1971)
2대 : 표대영(1971~1973)
3~4대 : 서정록(1973~1977)
5대 : 안현철(1977~1979)
6대 : 최진복(1979~1982)
7대 : 권혁철(1982~1985)
8~9대 : 최진복(1985~1990)
10대 : 이용우(1990~1994)
11~12대 : 김영덕(1994~현재)
▲고대농협(1972년 설립)
초대 : 손낙주(1972~1975)
2~3대 : 이병택(1975~1981)
4~8대 : 손계동(1982~1996)
9~10대 : 심준택(1996~현재
▲석문농협(1973년 설립)
1~5대 : 조문형(1973~1988)
6대 : 구명회(1988~1989)
7대 : 조병순(1989~1993)
8~9대 : 구명회(1993~현재)
▲대호지농협(1971년 설립)
1~4대 : 차선환(1971~1982)
5~10대 김형열(1982~현재)
▲정미농협(1972년 설립)
1~5대 : 윤영의(1972~1987)
6대 : 정응호(1987~1990)
7대 : 강영구(1990~1994)
8~9대 : 이종생(1994~현재)
▲면천농협(1971년 설립)
1~3대 : 황의철(1971~1980)
4~5대 : 이종호(1981~1987)
6대 : 채규칠(1987~1990)
7~9대 : 김용우(1990~현재)
▲순성농협(1970년 설립)
초대 : 구영서(1970~1973)
2대 : 김규원(1973~1976)
3~4대 : 이상호(1976~1983)
5~7대 : 박성기(1983~1993)
8~9대 : 이남영(1993~현재)
▲우강농협(1969년 설립)
1~3대 : 강희만(1969~1981)
4대 : 손태권(1981~1984)
5~6대 : 유태철(1984~1990)
7~8대 : 이은호(1990~1998)
9대 : 지충원(1998~현재)
▲신평농협(1972년 설립)
1~4대 : 김동익(1972~1984)
5~6대 : 최충섭(1984~1990)
7~9대 : 이영문(1990~현재)
▲송악농협(1972년 설립)
초대 : 이은철(1972~1975)
2~3대 : 백승모(1975~1981)
4대 : 조한규(1981~1984)
5~7대 : 송일권(1984~1993)
8~9대 : 이경훈(1993~현재)
▲송산농협(1970년 설립)
초대 : 이흥주(1970~1973)
2~4대 : 이건열(1973~1980)
5대 : 윤병학(1981~1983)
6~8대 : 김성권(1983~1993)
9~10대 : 김덕섭(1993~현재)
인터뷰/박창용/비리없는 깨끗한 신협, 이것은 내 생명이다
인터뷰/조용빈/“농민운동은 현장운동”
인터뷰/고중민/고향 당진의 환경 유토피아를 꿈꾸며
인터뷰/이종윤/투명한 경영이 서민위한 금고 만든다
인터뷰/이경용/조합원 이익 위해서라면 어떠한 역경도 감수
인터뷰/인치현/공동의 이익은 곧 나의 이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