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사역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사역 중 때때로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여러 번 반복하셨고, 창조사역을 마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셨다. 당신의 혼을 넣어 당신과 교제가 가능한 영적 존재로 창조하신 인간이 그렇게 보시기에 좋으셨던 것 같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는 말은 하나님을 원본으로 하고, 우리 사람을 하나님을 빼어 닮은 복사판으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 안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속성들이 그대로 내재해 있다. 그렇게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시던 하나님께서 한탄하시는 장면이 성경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내가 본 나도 중요하고, 이웃이 본 나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본 나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내 생명이 그분의 손 안에 있고(롬11:36), 사나 죽으나 그 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롬14:8)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노아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탄하시게 하고 근심케 하는 사람들이였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애녹은 동행하고 싶은 사람,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산채로 데려 가셨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노아는 종자로 남겨두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 8식구를 남겨놓으셨다. 또한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아브라함은 독자 아들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또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모세는 친구와 같은 사람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때때로 모세를 불러 친구와 대화하듯 말씀하셨다.

이외에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고라자손은 땅을 갈라 장사지내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사울 왕은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후회하시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사르밧 과부는 주고 또 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면에 비가 내리는 날까지 가루통에 가루가,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욥은 사탄에게까지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벨사살 왕은 달아보니 부족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가룟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착하고 충성된 사람이었고(마25:21),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어두었던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부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요셉과 다니엘은 높여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예의 신분인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로 세워주셨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항상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시다.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을 달아보신다. 문제는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이다. 하나님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종자로 남겨두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해 보고 삶의 방향을 수정하는 올해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