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빌라도 총독이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예수를 향해 갑질을 담아 한 말이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심문한 뒤 자기 입으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선포하고도 유대인들의 민란을 두려워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양심도 접고, 재판관으로서의 정의도 묵살하고, 한 나라의 총독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 외면한 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유대인들에게 내어주었다. 십자가사건 이후 20억 명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고백한다. 이 땅에 기독교가 존재하는 그날까지 이 고백은 계속 될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권한과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중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선택하므로 인류를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고, 전 인류를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소명에 떠나기로 뜻을 정하고 떠났으며,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에 드리기로 뜻을 정하므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권한과 마시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중 마시지 않을 권한을 선택하므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았고, 기도할 수 있는 권한과 기도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중 기도할 수 있는 권한을 선택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평소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기도하므로 사자 굴에 던져지는 생사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으며, 후세에 신앙의 정절의 대명사가 되었다.

열 두 제자들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를 수 있는 권한과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중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는 길을 선택하므로 기독교 역사에 천사도 흠모할 사도의 반열에 올랐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잔을 놓고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신 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시므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놓여있던 인류를 자유케 하셨고, 모든 산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셨다.

모든 사람은 할 수 있는 권한과 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 이 두 가지 권한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간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라사랑, 부모님의 대한 효도, 이웃사랑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서고, 가정이 가정다워지며, 신뢰하는 사회가 된다.

지금 우리는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지 않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만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두 여인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고 분노하고 허탈해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