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잦았던 늦가을 찬비가 무지개를 품고 내렸나 보다. 남산공원 가득 무지갯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 단풍이 무르익었다. 화톳불을 지핀 것처럼 붉게 타오르는 단풍나무, 고고히 푸르름을 자랑하는 소나무, 진노랑 빛을 띠며 사색케 하는 은행나무,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며 겨울을 준비하는 키 작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덴마크 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일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들의 삶의 원동력은 ‘휘게’ 정신이다. 휘게(hygge)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이다. 또한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한다. 그들은 여유 있고 단순한 삶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족 간에 대화가 줄고 사소한 일에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설득보다는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방법에 익숙해 졌다. 문득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달래어 가족 간의 교감과 친목을 도모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진문화재단이 가족오케스트라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지역신문에 떴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도 경제적인 부담감 때문에 배우기 힘든 우리 가족에게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큰 아이는 첼로를 나는 작은 아이와 함께 바이올린 파트를 맡았다.

첫 수업이 시작됐다. 마음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인데 몸은 뻣뻣한 삭정이 같다. 집에서 연습을 해도 합주시간만 되면 머릿속이 까매지며 악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활을 내려놓고 다른 단원들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악기의 특성은 달라도 각자 제 음을 내어 화합을 이루려 애쓰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을 하니 내게 주어진 파트를 따라갈 수 있었다. 연습을 통하여 인내하고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족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아이들과 소통이 차츰 원활해 졌다. 아이들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악기를 연주했다. 차츰 시간이 흐르자 삐걱거리던 음색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합주를 하면서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도 배웠다. 늦둥이 딸아이도 내년에는 오빠랑 같이 첼로를 하겠다며 첼로연주 동영상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 간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가족이란 함께 무언가를 꿈꾸는 것이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하는 가족이 꿈꾸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에 그 속에서 새로운 나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마치고 남산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향한다. 남산위에 감빛 노을이 말갛게 내려앉는다. 스치는 바람결에 가을을 머금은 낙엽이 하늘거리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한달음 앞서 내달리던 아이들이 서로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장난을 치며 까르르 웃는다. 그 모습이 마치 명화 속 풍경 같다. 사람들은 행복할 때 저절로 콧노래를 부른다. 시나브로 내 마음속에도 노래가 자리했나보다. 나도 모르게 합주곡 ‘시월의 멋진 날에’를 흥얼거리는 것을 보니. 아마도 토요일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하고 수업에 참석해준 아이들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가족오케스트라를 통해 우리 가족 안에 시나브로 자리한 휘게 예술이 있기 때문이다.

※송악읍 기지시리에 살고 있는 한현숙 씨는 8남매 둔 다둥이 엄마로 현재 당진수필문학회와 나루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