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특집기획 / 평택을 배운다

1. 평택항 개발의 진행과 그 원동력

2. 전향적인 공직사회와 사령탑 김선기 시장

3. 헌신적인 지구당과 정치지도자

-정장선 국회의원과 이계석 도의원

평택을 배운다 / 연재에 들어가며

생산적인 당진항개발 논의를 위해

경기도 평택시.

불과 2,3년 전만 해도 당진과 다름없는 내륙지역으로만 여겨졌던 곳. 당진과 서울방면을 오가는 버스 노선에서 늘 창밖을 보여 지나쳐온 친숙하기 이를 데 없는 이웃도시.

그 평택시가 어느날 대양을 향해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다. 이웃도시 평택은 이제 단순히 충남도와 경기도를 나누며 인접해 있는 평범한 이웃도시가 아니다.

1997년 4개 선석을 가진 작은 부두에서 출발한 평택항이 어느새 국제무역항을 향해 발돋움을 하는 것과 맞물려 평택시는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이자 광역국제물류도시로 성장한다는 부푼 꿈을 안고 질주하고 있다.

비록 최근에 우리 당진군과 항만을 둘러싸고 미묘한 갈등관계에 놓여있고 더 심하게는 바다위의 ‘도’경계 지점을 놓고 헌법재판소에 최종결정을 맡겨놓기까지 한 첨예한 관계의 상대 자치단체이긴 하지만 우리가 평택을 오로지 그런 상대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너무 안일하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일일 것이다.

무형의 항만을 가진 평택이 어떻게 그처럼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항만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만약 이런 질문을 갖고 그들에게서 배울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그쪽을 향해 겨누고 있는 경쟁의 눈길을 차라리 거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무리 지방자치시대라고 해도 발전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경쟁은 분열과 소모를 낳을 뿐 결국 국가 전체적으로도 생산적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에게서 배우고자 하기만 한다면 도농복합형 기본산업구조에 신생항만을 끼고 있는 여건도 비슷하고 역사가 오래된 항만에 비해 최근에야 개발상승로를 걷고 있다는 점에서 평택은 당진의 항만개발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들의 현대적이고 적극적으로 열려있는 정신과 기술을 배우는 것은 우리 마음 한구석에 도사린 얄팍한 자존심이 입을 상처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평택과 당진의 관계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호독립적이면서도 공존·공영하는 이웃시군으로서, 그리고 한 국가의 토대를 이루면서 국민적 삶의 질을 개선할 책임을 지닌 자치단체와 지역의 대표들로서 책임의식의 공유라는 대원칙일 것이다.

최근에 거군적인 과제로 떠오른 ‘당진항 지정’ 역시 이러한 대원칙 아래 자치단체와 정치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생산적인 항만개발계획과 준비 논의로 접어들 때에만 진정으로 의미있는 단계로 접근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의 군민운동 또한 의미있는 과정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본지는 당진항 독립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당진항개발을 위한 준비가 진행돼야 한다는 제안으로서 는 표제의 보도를 세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1. 평택항 개발의 진행과 그 원동력

꿈을 현실로 옮기려는 의지와 지도자 그룹의 헌신성

1) 항운노조 싸움으로 꽃핀 ‘평택항의 봉’

2) 지역정치권 대공조와 해수부에 떨친 이름

3) 결국 1500억 정부지원 받아내다

4) 대중국 무역전진기지 ‘꿈을 현실로’

5) 광역 국제 무역물류 도시를 꿈꾸며

6) 평택에도 고민은 있다

1) 항운노조 싸움으로 꽃핀 ‘평택항의 봄’

평택이 최근 항만개발에 일약 발돋움을 하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1979년이라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LNG선의 처녀입항에 이어 그해에 제1종 지정항만으로 개항된 후 1991년 두차례에 걸쳐 항계가 확장되면서 개발구역은 화성군 고온리에서 당진군 성구미리를 연결한 선내의 해면, 즉 현재의 아산만 일대 123백만㎡로 확정되었다. 이 수역에 포함된 지역은 경기도 평택시와 화성군, 충남의 아산시와 당진군 등 4개시군으로 이때의 명칭은 아산항이었다. ‘평택항’으로 명칭이 확정된 것은 1999년 3월의 일이다.

항만의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인천북항의 개발을 유보하고 인천항의 대체항으로 이 항구의 개발이 확정된 것은 91년. 이 뒤로 아산항 종합개발계획 용역이 완료되고 해양청의 5대 국책개발사업으로 선정되는 과정 등을 거쳤으나 그때까지도 평택의 보통사람들에게 ‘항만’은 생소하기만 한 것이었다.

정작 평택에 항만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97년말 항만개발 1단계 사업으로 3만톤급 4선석이 준공된 후 입항한 배의 하역작업을 누가 담당하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항운노조 문제를 취재했던 의 김기수 편집국장은 “도단위로 운영되는 항운노조의 체계 아래 이 새항구의 하역작업을 인천에 있는 경인항운노조에서 맡게되자 평택주민들은 기껏 항만개발로 새로 생긴 일자리를 다른 도시에서 나꿔채가는 것에 심각한 경제적 손실이 뒤따름을 자각, 경인항운노조로부터 독립된 평택항운노조 건설을 위한 싸움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부두노동자들과 시민, 정치지도자들까지 가세해 이 문제는 2000년 2월, ‘사업구역이 다르므로 복수노조로 볼 수 없다’는 판결로 평택항운노조의 독립이 인정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현재 평택항운노조에는 평택주민 170여명이 안정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2) 지역정치권 대공조와 해수부에 떨친 이름

평택항의 존재가 ‘경제적 생존권’의 문제로 이처럼 안팎에 알려지면서 ‘항만개발’은 전에 없는 관심을 끌게 되었고 지역개발의 중요한 이슈중 하나로 떠올랐다.

분명한 것은 항만개발이 비록 국가사업이긴 하지만 정부의 의지 하나로 순순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항만사업에 지역경제를 내맡기고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세계화 추세에 따라 여기저기 신항만건설의 요구는 높은 반면 거액의 투자를 요하면서도 투자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항만산업이기 때문에 항만투자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건은 예나 지금이나 어느 분야거나 통용되는 ‘우는 아이 젖준다’는 옛말이다.

평택의 경우 항만개발은 지역지도층 각계의 다각적이고 동시적이며 치열한 정부지원 촉구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6개국 항만관계자와 학자 150명을 대상으로 열었던 평택항개발 국제학술대회, 이어진 관세자유지역 지정건의, 2000년 민주당 지구당 주관으로 열린 평택항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2000년 시도주관으로 열린 평택항 투자설명회, 2000년 평택시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노무현 해수부장관 초청특강, 최근 경기도가 발의한 경기도 항만개발공사 설립에 관한 조례 등만 보아도 평택항을 중심축으로 하는 기초·광역자치단체와 정치권의 공동보조와 노력이 얼마나 숨가쁘고 치열하게 진행되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직원들이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아마 경기도와 평택시 사람들일 것’이라는 한 시청직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평택항 당진측 부두에 대한 투자와 개발은 전무했다.

3) 결국 1500억 정부지원 받아내다

경기도와 평택시, 그리고 이지역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지난해 활동의 성과로 평택항 개발의 성공적인 추진을 들고 있다.

실제로 2000년 11월 11일과 22일 정부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민자유치예정이었으나 IMF로 장기간 미개발상태에 놓인 평택항 동측부두 3개선석에 대해 이를 정부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4년간 이사업에 1,484억원을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재정 부족을 이유로 민자유치로 방향을 틀었던 정부가 민자유치가 부진한 항만중에서도 평택항을 유일하게 정부재정사업으로 돌린 것은 정부가 그만큼 평택항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며 이 부두의 시설로 항만의 면모가 더욱 갖춰져 나머지 부분에 대한 민자유치도 쉬워질 것이라고 평택시는 기쁨에 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곧이어 12월에 경기도와 평택시가 개최한 평택항 투자설명회에는 투자자와 전문기관에서 250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평택에서 벌어진 최근의 이러한 사태(?)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국회 농수산위원으로 있는 정장선 (43세)국회의원의 집요하고 뛰어난 로비와 성공적인 로비를 위한 성실하고 치밀한 준비가 있었다. 이것은 해수부측이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임창열 도지사와 김선기 시장도 정부의 정책적 배려를 수없이 건의했다.

4) 대중국 무역전진기지 ‘꿈을 현실로’

지난 세기 마지막 10년을 장식했던 구호가 있다면 국제화와 세계화다. 이와 더불어 서해안에 위치한 모든 지역이 내건 구호는 ‘중국 진출’이었다.

평택시는 지난해 중국진출의 1단계 꿈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국제화 붐을 타고 중국의 항만도시 10여군데와 우호교류를 맺은 바 있는 평택시는 1999년 8월, 장보고장군의 개척지였던 중국 산동성의 영성시와 급기야 국제여객선 항로개설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 주무부처의 사전재가가 없는 과감한 계약이었다. 항로개설과 국제여객 카페리운항에 대해 해수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평택시의 노력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다소 무리한 진행이었지만 국제여객터미널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배를 운항하느냐는 해수부의 반문에 평택시는 더욱 전향적인 자세로 대응했다.

평택시 자체예산으로 국제여객터미널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부두배후 야적장안에 부지 4,500평, 연건평 1,489평 규모로 여객터미널을 짓기 위해 평택시는 시의회의 동의를 이끌어내 시비 33억원을 과감하게 예산에 반영,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까지 공사기간을 거쳐 7월에는 중국과 평택간에 국제여객선이 운항될 예정이다.

평택시는 산동성의 일조항과 요녕성의 대련항, 하북성의 진황도항과도 카페리항로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평택시는 인천시의 반대를 무릅쓰고 ‘항만의 꽃’이라 불리는 최고급화물선 ‘정기 컨테이너선’의 항로개설을 추진해 이미 홍콩을 오가는 항로를 개설했고 중국 천진과 청도를 잇는 직항로를 개설중이다.

5) 광역 국제무역물류도시를 꿈꾸며

평택시는 이런 항만시설의 확충과 함께 방대한 배후기지 확보, 항만중심의 도시계획 재정비에도 착수했다. 항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항만배후에서 물류와 유통, 가공을 담당할 거대한 부지가 필요한데 포승면과 만호리, 신영리, 희곡리 일대 292만평등 총 500만평의 배후기지와 156만평규모의 물류도시 육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다. 이외에도 평택시에서는 관세자유지역 지정을 위한 노력과 인천지방해양수산청에서 독립해 자체 지방청을 가지려는 노력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경주되고 있다.

평택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구상들을 종합해 보면 모두 하나의 맥을 향해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평택시의 전략은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이 되는 국제적인 광역무역물류도시로의 발전이다. 그 발전의 핵심이자 견인차가 바로 평택항인 것이다.

평택항개발은 이처럼 장기적인 전략과 치밀한 계획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지역 정치지도그룹과 꾸준히 연구하고 정부지원을 요구하는 전담공무원들의 노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1997년 항만공업과의 한개 계로 출발한 평택시의 항만담당부서는 2000년 9월 항만경제국 항만물류과라는 독립부서로 분가하기에 이르렀다. 그 위에는 항만경제국이 있다.경기도 역시 지난해 11월 ‘경제정책과’를 ‘경제항만과’로 바꿨다.

올해 평택시의 예산서에는 평택항 관련 예산 415억9천6백만원이 계상되어 있다. 서부두건설에 141억, 외곽호안공사에 107억8천, 수로준설에 98억 등이다. 2001년 총예산의 30%에 이르는 규모로 모두 국비이다.

6) 평택에도 고민은 있다

평택이라고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택이 내놓는 자랑거리증 하나가 서해대교지만 서해대교 개통 이후 평택쪽의 관광수요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또 행담도가 당진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을 유인하는 반면 행담도 매립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수로의 축소가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행담도개발에 관한 환경영향평가 때마다 평택시민들의 우려와 항의가 높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평택항 개발의 드높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도시와 항구간의 불균형도 시에서 고민하는 문제다. 95년 평택군과 평택시, 송탄시가 통합되어 새로 출발한 평택시는 인구 35만명의 거구에도 불구, 항만과 접해있는 면이 포승면 1개 뿐이다.

평택시 안내홍보판에 쌀과 서해대교와 선박을 동시에 그려놓았듯이 농업·관광·항만 중 어느 것 하나로 분명히 좁혀지지 않는 지역개발의 지표 역시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서해대교 아래에 위치한 다목적부두시설이 당진군과 충남도가 제기한 ‘해상도계’문제에 휩쓸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터라 평택시는 당진군에 대해 매우 민감하면서도 상당히 절제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들이었다. 결정이 어떻게 나든 어느 한쪽 자치단체에는 커다란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택시 이필운(48세) 부시장은 “이런 민감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진군이 아산만을 이웃한 협조와 공존의 관계임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이것을 우선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인 박환우(37세) 회장은 “경제개발 뿐만이 아니라 관광·환경분야에 있어서도 당진과 평택은 아산만권이라는 공동생활구역 안에서 협력·공존의 길을 찾아야 할 동반자”라고 말했다.

<표1>항만수입구분

1999년

등 기 대 비

비 고

1999년 10월까지

2000년 10월까지

대비(%)

계

3,835

3,126

3,619

116

투자비보전:112억

무상임대:15억

<표2>선박입항

구분

1999년

등 기 대 비

비 고

1999년 10월까지

2000년 10월까지

대비(%)

계

4,467

3,614

3,961

110

외항

622

478

810

170

내항

3,845

3,136

3,151

101

<표3>화물 입출량 구분

1999년

등 기 대 비

비 고

1999년 10월까지

2000년 10월까지

대비(%)

계

26,132

21,133

25,109

119

외항

17,815

17,393

16,860

117

내항

8,316

6,740

8,249

122

<표4>평택항 시설현황 및 하역능력 구분

연장(m)

접안능력(DET)

고정식하역장비

주요처리화물

비고

한보철강

480

30,000×2

L.L.C 25T

야적장 60,802㎡

280

50,000×1

L.L.C 35T

야적장 5,040㎡

동부제강

120

5,000×1

고철, 철재

야적장 288,000㎡

일반

720

30,000×3

잡화, 철재

야적장 96,000㎡

전용

240

30,000×1

RO-ORT선 접안시설

철재

관리부두

물량장

330

3,000×1

모래, 일반잡화

저장탱크 10기

LNG

840

65,000×2

하역기 6기

유류

저장탱크 8기

한전돌핀

265

20,000×1

하역기 3기

벙커C유

남양호적출장

80

1,500×1

모래

LPG 부두

350

160

50,000×1

5,000×1

하역기 4기

LPG

저장동공 2개소

기호물류

245

30,000×1

유류

저장탱크 3개소

SK 돌필

-

70,000×1

하역기 3기

L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