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세 기미오씨 (설비기술자-일본인)

광복 50주년에 한국출장 온 일본인 해방동이

광복 50년, 반세기가 지난 요즘에도 우리나라에는 일제의 잔재들이 유형, 무형으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으며 또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구 조선총독부의 건물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숨통을 눌러 질식사시켰던 그 건물을 이제 허물고 원상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로 숨을 쉬고 나라의 체통을 이어가며 바른 정기를 받아 한국의 기상을 드러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이에 앞서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진료와 보상,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보상문제등의 쟁점도 해결을 봤으면 한다.

육촌형제중 한분이 어려서부터 단신으로 서울에서 살았다. 자전거를 타고 채소를 팔았으니 궁색함이란 말할 수 없었던 27세의 노총각이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1941년 세계 2차대전을 발발시켰다. 중국본토의 일부와 필리핀, 동남아시아등으로 마구잡이 밀고 내려가 아시아의 공영권을 부르짖고 기세등등하던 1943년경, 육촌형은 어느날 갑자기 장가를 들었다. 자기 스스로 기거할만한 방 한칸도 마련 못하던 가난뱅이가 횡재를 한것이었다.

때는 일본군들이 한국의 처녀들을 근로자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위안부로 끌고가며 처녀사냥을 하던 때이다. 내가 살던 옆집에 16세의 처녀가 있었는데 위안부로 내보낼 수 없어 처녀어머니와 우리어머니가 하루만에 결정하고 우선 혼인신고부터 해놓고 이집저집에서 돈을 추념해서 방 한칸을 얻어 합궁을 시켜주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내 육촌형뿐 아니라 그때의 사회상으로 많은 처녀들이 위안부 신세를 면하기 위해 전격 결혼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때의 사회상이었다.

부부의 행복한 만남을 우리는 천생연분 또는 천정배필이라고 한다. 하늘이 미리 정해준 좋은 짝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배우자를 베터하프(better half)라고 한다. 나보다 더 좋은 반쪽이라는 뜻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없고 행복한 일이 없다.

우리들의 어버이들의 부부철학은 부창부수였다. 즉 남편이 주장을 하면 아내는 마음에 안 들어도 그대로 따르고 순종했다. 바로 부부화합의 길이었다. 그렇게 하여서도 오늘날까지 아들 딸 낳고 키워가면서 백년해로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지금 젊은 부부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격세지감이다.

후루세 기미오씨!

후루세 기미오씨는 일본인 해방동이(전후세대)로서 철구조물 기사이다. 50세가 된 오늘 여권을 처음으로 발부받고 외국나들이는 한국이 처음이라고 하면서 멋적은 웃음을 던지는 작은 체구의 일본인이다.

후루세씨를 만난 것은 6월초, 일본의 정치지도자들과 극우단체들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해 망언을 하던 때였다. 망언에 대해 후루세씨의 의견을 물으니 자기는 전후세대라 그전에 행한 일에 대해서 잘모르겠다고 하면서 망언에 대해 말하길 기피하고 나서 그러나 한국정부나 국민들이 분노를 하는 얘기는 서로간에 이익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며 이웃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면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좋겠다고 답을 한다.

누구든 사람으로서는 크게 집단적인 사람과 개성적인 사람의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집단적인 사람은 집단을 중시하고 체면이나 눈치를 더 소중히 하면서 그 집단에 절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개성적인 사람은 남이 뭐라고 하건말건 자기 길을 소신껏 간다. 집단적인 사람과 개성적인 사람은 서로 맞지 않아 상대를 불편하게 느낀다. 특히 집단적인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집단이익에 봉사를 하게 된다. 일본 사람들이 바로 집단적인 생활에 몸과 마음이 굳혀있는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다.

후루세씨가 근무하는 트리니티공업은 한국의 모 자동차회사에 풀렌트를 수출하였고 그 공장의 설비와 제작에 기술지도 및 감독자를 파견하였는데 감독자의 한 사람으로 출장을 온 것이다.

면천 농공단지내에 있는 영화엔지니어링회사가 한국의 자동차공장의 설비중 일부를 하청 맡아 제작을 하고 있는데 이 공장에 파견나온 감독자이다.

후루세씨는 일본 중부지방의 기후갱출신으로 중학을 졸업하고 트리니트공업회사에 취직했다. 쇠를 자르고, 갈고, 땜질하는 일에 35년 경력자이며, 금년 봄에 과장으로 승진되었다. 일본의 토요다자동차공장의 설비때도 참가했다는 후루세씨는 8백여장의 설계도면을 환하게 꿰뚫고 있는 오랜 경험의 기술자로서 노하우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배우고 정성을 다해 일할 때 그 사람의 이마에 맺혀진 땀방울에 아름다운 빛이 발산함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일본도 한국을 비롯하여 동남아 여러국가에서 진정으로 식민지 통치의 한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섭섭한 일을 하거나 상처를 주면 그를 곱씹게 된다. ‘괘쌤한 놈’하며 별별 생각을 다하고 다시는 그와 어울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전에 내게 한 짓은 그때 일이고 앞으로 다시 만날 때는 다시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면 의외로 그가 다른 여러가지 가능성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와의 관계도 새롭게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도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