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영 숙 주부백일장 대상 수상자

정서연령 충만한 행복한 여성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온산을 불이 붙은듯 타오르는 단풍나무를 보노라면 왜 저렇게 붉게 타오르고 있을까 하는 상념에 넋을 놓게된다. 붉은 단풍은 “이땅에 우리의 죽음을 묻기위해, 그리고 천상에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붉게 타오르고 있다고 시인들은 노래하였다.

일생을 통해 이룩한 모든 것을 사회로 되돌리고 내가 닦은 많은 지식과 경험을 후손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게 그들에게 남겨두고, 내가 모은 재산을 사회복지를 위해 보람있게 쓸 수 있도록 해놓고 떠나는 것은 사람으로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히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결단력이 가장 기본적인 것같이 보이나 그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집념과 인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가을에 붉은 단풍에 넋을 잃으니 가을에는 남성들은 어려지고, 여성들은 깊어져간다고 여류 문필가인 류교수는 그녀의 노트에 적었던 것이다. 가을에 남성의 정서연령(情緖年齡)은 실제 나이보다 한 십년쯤 어리게 보여지며 반면에 가을 여성의 정서연령은 한 십년쯤 더 먹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정서연령(EMOTIONAL Age)도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정서연령은 지적인 정신연령(MENTAL Age)과 생활연령(Chronological Age)과는 별개의 제삼의 연령으로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강영숙씨!

강영숙씨는 상록문화제 주부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은 시를 썼다. 그녀는 가을에 들어서 “황혼이 젖는 머얼리/그믐달을 등진 잎새에는/하늘 높이 달려가는 한줄기/빛깔 고운 기운이 숨쉬고 있다” 라고 노래를 불렀다. 황혼이 짙어지면 초생달을 그렸을 것을 심연속에 파묻힌 그믐달을 퍼올려 새 희망으로 짝을 맞추는 여인의 마음은 정서연령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보는 나 자신이 더욱 애띠여가는 것같아 얼굴이 붉게 타오른다.

우리 기성인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어떤 학구적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 보다 대자연의 계시와 섭리를 진리로 승화시켜 자신의 마음을 키워가기 위해서인 것이다. 사고(思考)와 사랑의 불꽃을 싱싱하게 변함없이 간직하고 우리 이웃들과 이해하면서 그리고 주면서 받는 사랑으로 불타게 하는 가을 그 계절, 강영숙씨의 노래는 이렇게 이어내려 간다.

“저 건너편 초가의 호롱불 빛은/한밤에 뻗어나는 달빛과 같은/한줄기 짙푸른/희망이 숨쉬고 있다”

요새 학생들은 학년차이가 1년만 되어도 구세대로 편을 가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이지만 본래의 목적인 학업에 전념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것, 머리속에 온통 결혼문제, 가정, 남편, 그리고 자식 따위의 생각만 하고 있다면 그 학생은 이미 나이든 주부로서 구세대측에 속하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늙어서 기동을 못할 때까지 자신이 신세대, 청춘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고 사회봉사활동과 대학부설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는등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한다. 그것이 그 나라를 일등국가로 키워가는 어떤 할머니들이 70세가 넘어서도 책을 펴내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나이는 비록 환갑을 지났지만 여전히 인생에 대한 도전과 꿈을 잃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젊은 신세대와 같은 부류에 끼워 넣어도 무방할 것이 아니겠는가.

강영숙씨!

두자녀를 둔 엄마요, 집안을 이끌어가는 주부이며, 갓 시집와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의 병 수발을 몇년간 감수해온 어진 며느리 역할도 했다. 1백여마리의 소의 젖꼭지를 하루에도 두어번 닦아야하는 고통도 이겨냈었다. 반짝이는 새까만 눈동자에서 수정구슬알이 떨어질듯한 강영숙씨는 익어가는 가을에 자화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낙엽따라 가버린 꿈을 찾아/빛바랜 추억을 살포시 떠내어/한장 한장 동심으로 가면/까만 동공속에/기다림과 기대에 부푼 소망들이/꿈틀거리고 있다”

강영숙씨는 신평출신으로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부터 YMCA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나환자촌, 양로원, 고아원등을 두루 거치면서 젊음에서부터 인성의 성숙됨을 키워갔다.

나환자 마을에서 일생동안 내과의사로 일했던 의사는 에세이에서 “아픔과 고통을 느끼게 하여준 하느님께 감사한다” 고 서문을 써내려가면서 “나환자들이 손가락과 발가락, 심지어 얼굴의 형체까지 일그러지는 이유는 나병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이 마비되고 둔감해서 아픔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전염병의 병균이 살을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며 전혀 감각이 없으며 어떤 고통도 그를 아프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강영숙씨!

우리 속담에는 “집이 잘 되려면 남의 집 식구가 잘 들어와야 한다” 고 며느리의 역할을 크게 의지하였으며 “배개머리 송사를 당할 남자가 없다” 고도 하였으니 집요한 여자들의 요구가 가문의 성패를 가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강영숙씨는 그의 시에서 가정을 가꾸고 보살피는 가정철학을 아래와 같이 읊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드러냈다.

“가슴 기대는 친구야/너와 나는/낙엽을 찾는 백치가 되어/농도짙은 가을들녘에 소망의 꿈들을/뿌려주는 천사가 되자”

전문가들이 아니면 읽기도 어렵고 뜻도 이해하기에 어리둥절해지는 시들이 판을 벌리는 시문학의 장르에서 강영숙씨의 시를 대하니 퍽 오래간만에 오염되지 않고 공해에 범첩되지 않은 선명한 글을 읽은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하면서 동화극 “파랑새” 의 작가 메데를링크의 대사로 대상을 축하드린다.

“행복이란 건강, 정의, 모성적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