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이 땅을 지켜온 진정한 힘
강 완 선 (국가유공자)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이요, 또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도 죽음 그 자체인 것이다. 평생 잘 산 사람은 한번 죽지만, 잘못 산 사람은 몇번이고 죽으면서 그 후손까지 욕되게 한다는 산 교훈을 우리는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은 것이다. 길거나 짧거나 한정된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잘사는 사람은 그 시간을 귀하게 여기면서 잘 쓸 줄 아는 사람이고, 잘못사는 사람은 모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임에도 귀중한지 모르고 죽을 쑤면서 낭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시간은 가는 것이지 오는 것이 아니다. 강물처럼 한번 흘러가 버리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후퇴하는 것이 아님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들은 돈이나 물건을 아까워하면서 시간은 아까워할 줄 모르고 살고 있다. 시간이란 곧 우리들 목숨의 한토막임을 잊고 사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허락된 세월이 손에 쥔 모래알 처럼 술술 빠져나가는 것임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말하고 역사의 뒷자락을 뒤적거리는 것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자는 것이며 어리석은 반복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가.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과 6.25사변일이 들어있다.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6.25 전쟁으로 전국토가 쑥밭이 되었으며 몇백만의 인명이 죽고 다쳐 장애자들이 생겨났던 전쟁. 불과 46년전의 일이다.
군자표변(君子豹變), 주역에 나오는 말로서 군자는 표범의 털가죽이 선명하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처럼 날이갈수록 변해야 한다는 것.
6.25 사변후 쑥대밭에서 오늘의 나라를 지탱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등을 주물럭거리는 사람들이 이 나라와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들은 한낱 겉으로 드러난 물거품의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누구일까.
어두움을 밀어내고 새날을 여는 새벽의 거리를 보자. 청소차와 미화원이 바쁘게 지나간다. 신문과 우유배달원들이 출렁인다. 운동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활기를 뿜으면서 산으로 오른다. 삽자루를 비켜들고 논두렁을 어슬렁 거리는 농부들, 밤을 새어 서울 남대문 시장을 휘젓고 버스에서 옷보따리를 한아름 들고 내리는 시장의 상인들 등등의 많은 기층의 서민들이 큰 소리냄도 없고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으며 자기 자리를 지켜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이 나라의 주역들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강완선씨!
강완선씨는 21살의 젊은 나이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나갔다. 최일선인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서로간에 총알과 포탄이 비오듯 주고 받는 와중에 코밑에서 터진 포탄으로 오른쪽 발등에 파편이 뚫고 지나갔다. 경주 18육군병원에서 8개월의 치료끝에 상이용사로 명예제대를 했다. 1년7개월의 짧은 군생활, 7사단 5연대 당시 하사(지금의 일병)로서, 지금은 보훈대상자로 6급의 판정을 받고 매월 48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으며 당 68세.
강완선씨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으며 국토를 한치라도 빼앗기지 않기위해 피를 흘렸다. 국토가 무엇이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불러들였고 또 수많은 피를 쏟아 부었던가.
국토란 그냥 있어온 땅이 아니다. 강완선씨와 같은 젊은이의 목숨을 내놓고 지켜온 겨레의 땅이고, 우리모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친 삶의 터전인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아득한 그 옛적부터 헤아릴 수 없을만큼 이웃나라들이 침공한 땅을 지키며 이루어 온 땅이며, 우리들의 육친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와 살이 녹아든 땅이고, 수많은 영혼들이 쉬고 있는 성스러운 대지인 것이다.
강완선씨!
진눈깨비가 내리는 추운밤 섬광이 번쩍 번쩍 오고가는 산마루에서 적군들이 산등으로 기어오르는 숨막히는 시간이 흐를 때였다. 내의 두벌과 작업복, 그리고 방한복까지 입은 몸은 속살까지 얼어 추위와 공포의 시간이 조이고 조여들고 있을 때 쾅하고 포탄이 터졌다. 강완선씨는 멀쩡하였는데 옆에 있던 고향친구가 포탄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적에게 사방으로 포위를 당했으나 자기 한몸 피하기도 어려운 산마루에서 부상당한 친구를 겨드랑이에 끼고 밤새 탈출을 시도했다. 동서남북을 가늠하기 어려운 칠흑에서 하늘의 도우심인지 삐삐선(유선전화선)이 손에 닿았다. 그 선을 손에 쥐고 방향을 잡아 포위망속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강완선씨!
전쟁은 지나갔으나 부상당했던 친구를 가끔 만난다. 만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그때를 회상하게 된단다. 불편한 발을 끌면서 가꾸어 온 과수원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 지내는 데 30년만에 주인을 찾아 돌아온 “화랑무궁화훈장”을 가슴에 달면서도 불운했던 우리의 과거를 되씹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일으킨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피흘림이었던가. 보훈의 달과 6.25 전쟁일을 맞아 되씹어볼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