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여 곳에 똥섬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당진에 있다. 소난지섬 남쪽 우무도의 바로 옆에 있는 분도를 ‘똥섬’ 혹은 ‘목새섬’이라고 불렀다. 암소 모양의 우무도 옆에 있어 이 섬을 소의 똥으로 여겨 ‘똥섬’이라 불렸던 모양이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면 길(목)이 드러나는데, 그때마다 소난지섬 주민들은 이 똥섬에서 고동을 따고 굴을 채취했다.

해안을 끼고 있는 당진에는 수많은 섬이 존재했다. 간척사업이 진행되기 전까지 20여 개의 유·무인도와 몇몇 이름 없는 섬이 있었다. 하지만 육지로 이어지면서 이름만 섬이 됐다. 초락도가 그랬고, 아산만의 유일한 섬인 행담도도 서해대교 공사로 육지와 연결됐다.

한편 섬이었던 행담도에는 한정초 행담분교와 당진경찰서 행담초소가 있었다고 한다. 섬사람들은 주변에서 자생하는 바지락과 굴, 낙지 등을 채취해 살았다. 맨손어업으로 먹고 살아 섬에는 개인이 소유한 배는 단 한 척도 없었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분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교육청에서 마련해 준 목선뿐이었다.

당진에 변화의 파도는 섬들을 하나둘 뭍으로 꺼냈다. 현재는 유인도 4곳(대난지섬·소난지섬·대조도·소조도)과 무인도 5곳(우무도·분도·비경도·철도·영웅바위)이 존재하고 있다.

난초와 지초가 무성했던

난지도(蘭芝島) 혹은 난지도(難地島)

하(河)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이 섬에 표류해 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하 씨의 꿈에 도인이 나타나 “나는 이 섬을 지키는 황룡인데 내일 청룡과 결투가 있으니 그때 너는 내가 주는 화살로 청룡을 쏘아라”고 말했다. 다음 날 정말 두 용의 결투가 치러졌다. 그때 하 씨가 화살을 잘못 쏘았고 결국 황룡이 죽었다. 황룡이 떨어진 자리에는 난(蘭)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으며, 하 씨가 죽고 난 무덤에서도 이상한 풀들이 자랐다. 사람들은 이 풀을 지초(芝草)라고 불렀고, 난초와 지초가 많이 자라 난지섬이 됐다는 전설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난지섬과 옹진군 대부면 풍도 사이의 물살이 거세 배가 다니기 어려워 난지(難地)섬이라고 하던 것에서 한자가 변경된 것이라고도 한다. 본지 제200호 ‘섬, 섬사람들’에 따르면 난지섬에는 출난이나 원추리난 등 야생난이 많이 서식하고 있고, 지초도 많이 자생했다. 하지만 1960년대 대난지섬에 홍역이 유행하며 아이들이 홍역을 앓았고 그때 지초를 약으로 다려 지금은 지초가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난지섬은 총 9개의 섬으로 이뤄져 이 일대는 ‘서해의 다도해’라고도 불린다. 지난 2010년 행정안전부가 국내 10대 명품섬에 선정하고 이후 차츰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캠핑을 위해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 난지섬에는 대난지섬에 189명, 소난지섬에 7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밖에 유인도인 대조도에는 12명, 소조도에는 1명이 살고 있다. 점점 주민들이 노령화하면서 맨손어업 인구도 줄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줄었다. 대난지섬과 소난지섬을 합해 유일한 학교인 삼봉초등학교 난지분교의 전교생은 현재 2명 뿐이다.

고사리 많던 비경도

소난지섬에서 남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비경도는 대난지섬과 소난지섬 다음으로 크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아 무인도다. 비경도에는 고사리와 더덕, 취나물 등 산나물이 많다고 한다. 봄이 되면 소난지섬 주민들이 이곳을 찾아 나물을 뜯곤 했다고. 비경도는 인근에서 작업하는 바지선이나 어선이 피항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지난 2014년 기름 유출 흔적이 발견돼 방제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쇠 같은 돌의 ‘쇠섬’

철도라는 이름 역시 낯설다. 철도는 대난지섬 서쪽 해안에서 1km 내에 있는 섬이다. 이름과 같이 돌이 쇠같이 단단하고 모양도 쇠와 비슷해 쇠섬이라 불려 철도(鐵島)가 됐다. 하지만 또 다른 설로 난지섬 서쪽에 있어 서섬이라 불리다 쇠섬이라 바뀌었다고도 한다. 철도는 당진에서 가장 작은 무인도다.

소난지도의 바람막이 우무도

우무도는 마치 암소가 꿇어 엎드린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 우무도라 불렸다. 우무도는 2018년 무인도서 관리유형 지형고시 내역에 따르면 우무도 면적은 2만7372㎡다. 소난지섬이 의병의 근거지임을 확인한 일본 경찰대가 1907년 3월 15일 오전 6시경 탈취한 어선을 몰고 소난지섬으로 상륙을 시도할 때 당도했던 곳이 우무도였다.

당시 소난지도 의병들은 경찰대를 향해 1시간 동안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화력이 우세한 경찰대 상륙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9시간 동안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의병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결국 동쪽 해안 끝까지 밀려 3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또한 북쪽에 있는 동굴 속에 있던 의병 5명도 살해됐다. 바다에 빠지고 행방불명된 의병도 50명에 달한다.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영웅바위

한진포구는 당진 이남의 주민들이 서울이나 경기도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가는 지름길이었다. 한진의 ‘진’(津)을이 말해주듯 나루터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나그네의 길목이었던 한진포구 앞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돌섬이 있다. 주민들은 이 돌섬을 ‘영바위’라고 불렀으며, 옛 기록에는 ‘영웅바위’로 남겨져 있다.

옛날 한진리 어부들과 주민들은 썰물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영웅바위에서 굴과 바지락을 캤다. 또한 영웅바위를 지표 삼아 어부들은 배를 몰았다. 영웅바위는 2004년 도계분쟁에서 충남도와 경기도의 해상경계 확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영웅바위에 대해서는 평택이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해상 경계의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