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항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정미면 매방리 출신의 남정현 소설가가 지난해 12월 87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아들 부부인 남돈희·나명주 씨가 아버지를 추억하며 당진을 찾았다.
남돈희·나명주 씨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4개 문인단체에서 합동 문인장으로 아버지 가는 길을 함께 해줬다”며 “아버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폐렴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한 지 2주 만에 돌아가셨다”며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 방에 걸린 그림을 보면 아직도 살아계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외식을 좋아하셨어요. 식사 후에는 버스를 타고 광화문과 혜화동을 한 바퀴 돌아보는게 낙이셨죠. 혜화동만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나가지 못하셔서 안타까웠어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던 아버지
아들 남돈희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외유내강형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왜소하지만 속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의 소설 주제는 분단 문제와 외세 문제 단 두 가지였다”며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두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글을 써온 것이 존경스럽다”고 전했다.
故 남정현 작가가 두 번의 옥고를 치렀을 때 5살, 14살이었던 아들 남돈희 씨는 “나이가 어렸고 어머니도 아버지가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셔서 아버지가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에도 철학과 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셨지만 따로 내게 교육하지는 않으셨다”며 “종종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와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가고, 아버지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정치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없이 다정한 할아버지”
한편 故 남정현 작가는 큰 손주인 남상일 씨를 아꼈다. 인터뷰 때도 아들·딸 이야기보다 손주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故 남정현 작가는 컴퓨터를 사용하기 어려워 손주에게 글을 타자로 써 달라는 부탁을 종종 했다. 손주 남상일 씨는 “학창시절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며 “할아버지가 아침에 깨워주는 등 부모님처럼 많이 돌봐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글을 쓰셨는지는 잘 몰랐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저항작가였지만 나에게 할아버지는 다정한 할아버지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할아버지가 입원하기 이틀 전에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는데 시험 준비로 바빠 식사하지 못한 게 죄송하고 한이 됐다”며 “먼 훗날 할아버지를 만나면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