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보는 우리 역사]

금주의 당진역사(唐津歷史)

4월 둘째주(4월 8일~14일)

8일 : 대호지면 송전리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천도교측의 백남덕등이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당진군지).

11일 :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에는 보통학교에 입학치 못한 아이가 많음으로 유지 50여명이 모여 교육협성회를 조직하고 회원에게 매년 보리 닷 되, 벼 한 말씩을 거두어서 기본금을 삼기로 하고 면양학원(沔陽學院)을 설립하여 3개년 동안에 보교정도를 다 가르칠 계획으로 얼마 전에 면천공립보통학교 안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모든 것을 협의한 후 임원까지 정하였다 하며 교실은 우선 그 곳 향교를 사용하기로 하였다(동아일보 1923년 4월11일).

: 충남 당진군 농회에서는 지난 11일 오후 1시 당진공립보통학교에서 회장 강대철(姜大喆)씨 사회 하에 작년도 각종 농산물 품평회 수상식을 거행하였는데 각 심사장의 심사보고가 끝난 후 포상수여를 행하고 회장의 인사와 내빈축사며 수상자의 답사 등으로 오후 3시경에 폐회하였다는데 각종 품평의 종목급 수상자 씨명은 다음과 같다(이하 생략, 동아일보 1928년 4월20일).

12일 : 충남 서산군 정미면 천의리 이춘(李春)여사는 그 면 공립 소학교 증축비로 돈 3백원을 희사하였다함은 이미 본보에 보도한 바이어니와 전기 여사는 음식점 영업으로 푼푼이 모은 돈을 아낌없이 교육시설에 희사함에 대하야 지방유지로서는 두 손을 들어 감축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지난 12일 오후 2시에 전기 여사의 장학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조선일보 1938년 4월18일).

13일 : 충남 당진군 송산공립보통학교에서는 창립 이후로 2회 졸업생까지 내었으나 4년제로 인하여 진급아동의 곤란을 무한히 느끼게 되던 바 당면 유지의 발의로 작년부터 연장기성회를 조직하고 맹렬한 운동으로 연장허가를 바라던 중 금년부터 승격하기로 허가되었다(동아일보 1927년 4월13일).

일제시대 당진 교육에 관해…

당진의 교육기관은 조선시대 관립학교로서 당진향교와 면천향교가 있었고 사립학교로서는 동리마다 많은 서당이 있었다.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근대 학문을 교육하고자 사립학교가 등장하였다. 합덕의 매괴학교(1907), 면천의 미산학교(1908), 면양학교(1908) 등을 들 수 있는데 근대적 관립학교는 설치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 일본 식민화(日本植民化)의 토대가 되는 일본어의 보급, 이른바 충량한 제국신민과 그들의 부림을 잘 받는 실용적인 근로인, 하급관리, 사무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국인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1911년 면천공립보통학교(면천초등학교)가 세워지고 1913년 당진공립보통학교(당진초등학교)가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저급의 4년제로 되어 있었는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형식상으로 일본 학제와 동일하게 6년제로 하였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교육정책은 동일한 교육제도와 교육기간을 확충함으로써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 또는 말살하려는 데 있었다.

송산초등학교는 1923년 5월1일 개교하였는데 시골에 위치한 때문인지 4년제로 시작하였다. 그후 송산면민의 후원과 연장운동에 힘입어 1927년부터는 6년제로 승격되었다. 1932년 통계에 의하면 당진(조금, 정미 제외)의 공립보통학교 중 6년제 학교는 면천, 당진, 석문, 합덕, 신평, 송산 등 6교이고 범천(우강), 송악은 4년제였다.

자료조사 : 김남석 (호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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