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둘째주(7월 8일~7월 14일)
8일 ◆時價 2천5백의 공설운동장 제공
충남 서산군 정미면 천의리에서는 군내에서 굴지하는 선진지방으로 유의 청년도 상당히 포용되어 있는데 오래전부터 체육향상 기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운동장도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오던 바 당지 남창상회(南昌商會)를 경영하고 있는 청년사업가 남창희(南昌熙)가 체육을 극력 향상시키고자 넉넉지도 못한 처지에 토지 3천 평을 자진 희사하여 군내에 다시없는 좋은 운동장을 만드는 중이라는 바 일반은 씨의 장지에 감격하여마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일보 1937년 7월8일)
9일 ◆충청우도 암행어사 이인복이 복명하다
충청우도 암행 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이인복(李仁復)이 조정에 돌아와 복명(復命)하였다. 태안(泰安)의 전(前) 현감(縣監) 한성흠(韓聖欽), 비인(庇仁)의 전(前) 현감(縣監) 홍석구(洪錫九)·덕산 현감(德山縣監) 이덕소(李德邵)·결성 현감(結城縣監) 유봉명(柳鳳鳴)·면천 군수(沔川郡守) 이의화(李宜華)는 모두 불법을 저질렀고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에 나문(拿問)하였고, 공주 목사(公州牧使) 이형좌(李衡佐)·당진 현감(唐津縣監) 이운호(李耘好)는 정치를 잘하였기 때문에 포상(褒賞)을 가하였다.
(1717, 숙종 43년 7월9일
10일 ◆物産會社 設立(물산회사 설립)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 내지인(內地人-일본인) 심곡미태랑(深谷彌太郞)씨는 해시 유지 임영주(林榮周), 이종화(李鍾華), 김성복(金成福) 제씨와 공히 발기하여 주금(株金) 2만여 원을 모집하여 물산회사를 설립하고 상업을 발전케 하기 위하여 자기의 금액 200원을 지출하여 일주일간 시장의 연악을 특설하여 성황을 정(呈)하였다더라.
(매일신보 1918년 7월10일)
◆祈雨祭 擧行, 唐津(기우제 거행, 당진)
충남 당진에서는 우량부족으로 아직까지도 이앙치 못한 곳도 많지만은 한발이 오랫동안 됨으로 기위 이식된 것도 거의 고사지경에 이르러 소동이 더욱 비등하다는 바 이를 우려하는 군당국에서는 당지 부근 명소에 제단을 설치하고 군수이하 면장 유지 제씨가 모이게 되었는데 제 1일은 시곡리 태백산(太白山), 제 2일은 사기소리 이배산(離背山), 제 3일은 채운리 사직단(社稷壇)에서 예정과 같이 3일간을 거행하였다하며 그 외에 각 면에서도 기우제를 많이 지내었다더라.
(동아일보 1928년 7월10일)
12일 ◆忠南에 旱騷 繼續(충남에 한소 계속)
이곳저곳에서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나 충남지방은 오랫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이미 이앙한 논바닥이 약 7할 가량이나 말라서 벼의 생육은 말못하게 불량하여 지방에 따라서는 벼가 말라죽는 곳도 있고 또 전작(田作)에도 죽은 곳이 많아 농민들은 크게 근심중이다. 그리고 어떤 지방은 먹을 물조차 없어 소동중인데 이 모양으로 한발이 심하여 인심이 극히 불안하매 시장에는 매매조차 한산한 터이다.
(조선일보 1935년 7월12일)
자료조사·글 : 김남석(nsk6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