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외국 지역신문에서 배운다 / 미국의 지역신문과 진실보도

장호순 /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의 모든 신문은 지역신문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였던 월터 리프만은 아이오와주에서 발행되는 의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을 통해 “미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확고히 보장된 주된 이유는 미국의 신문이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한 도시나 지역에 속해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미국 신문의 지지기반은 그 신문이 발행되고 읽혀지는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특정세력이나 집단에 의해 지역 전체 혹은 국가사회 전체의 여론이 왜곡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미국의 신문은 아직도 지역성의 뿌리를 버리지 않고 있다. 물론 1984년 미국 최초의 전국지를 표방한 USA Today가 등장하긴 했지만, 전국지가 지역지 위주의 미국 신문시장 구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미국의 신문은 뉴욕타임즈든 워싱턴 포스트든 거의 모두 지역신문이다. 다만 지역의 규모에 따라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처럼 지역에 살면서도 그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읽지 않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구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을 대표하고 있는 신문으로 알려진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도 발행부수 대부분이 뉴욕이나 워싱턴 지역내에서 소화된다. 즉, 워싱턴 지역을 벗어나면 를 읽는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살면 로스엔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읽고, 마이애미에서 살면 마이애미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읽는다.

■지난 30년간 독자 3배 늘어

미국인들은 철저하게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읽는 까닭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신문이 발행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1999년 말 현재 1천5백여개의 일간지와 8천1백여개의 주간신문이 발행된다.

미국의 신문시장이 지역신문 위주로 형성된 또 다른 이유는 광고 때문이다.

1999년 말 현재 미국의 광고비 총액은 2천1백53억1백만 달러였다. 이중 전국광고가 59.3%인 1천2백76억6천3백만달러, 지역광고가 40.7%인 8백76억3천8백만달러였다. 그러나 신문광고에서는 지역광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999년 미국의 전체 광고비 중 신문광고는 21.5%인 4백62억8천9백만달러였다. 신문광고비 중 전국광고는 14.54%에 불과한 67억3천2백만달러였다. 나머지 85.46%는 지역광고였다. 3백95억5천7백만 달러의 지역내 신문광고 중, 지역의 유통업체 광고가 45.16%, 구인구직 등의 생활정보 광고가 40.29%를 차지했다. 이러한 지역내 신문광고비는 미국 공중파 방송의 광고비(4백억1천1백만 달러)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지역신문과 대도시 신문은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1965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주간 지역신문의 구독자수는 3배 가까이 성장했다. 반면 현재 일간신문 구독자 수는 1955년 수준과 거의 동일하다. 그 당시보다 미국의 인구는 64%가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간지 구독자의 비율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미국지역신문 경쟁력은 지역소식

미국의 지역신문 종사자들이 중요하다고 평가한 10개 아이템을 보면 모두 지역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1)지역 축제·행사에 관한 뉴스 2)지역내 문제나 갈등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려주는 것 3)지역내 인물을 소개하는 것 4)지역내 학교뉴스를 제공하는 것 5)지역내 공직자들을 감시하는 것 6)독자투고 7)지역내 시민단체나 친목단체에 관한 뉴스 8)지역개발에 관한 뉴스 9)지역내 갈등을 공개해 지역주민들이 해결토록 하는 것 10)정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제도를 알려주는 것 등이다.

대형 일간지의 침체나 방송매체, 뉴미디어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미국의 지역신문이 건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역뉴스 제공기능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이 알고 싶어 하지만 다른 언론매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자세한 주변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파출소에 신고된 모든 사건이 낱낱이 소개되고, 시청, 시의회, 교육위원회, 도시계획위원회 등 주민대표기관의 각종 회의도 세밀하게 보도된다. (지역신문이 이렇게 보도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시민단체가 굳이 의정감시단을 구성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취재인원, 기술적 여건, 재정적 지원 모든 면이 대도시 일간신문에 비해 열악한 미국의 지역신문은 비록 세련미는 떨어지고 단순취재가 많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순진하고, 친숙하고, 다정하게 여겨진다. 지역주민들의 지역신문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대도시 일간지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지역신문을 통해 삶의 의미를 느끼고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지역신문을 광범위하게 취재한 의 메리 왈튼 기자는 미국의 지역신문이 “귀중한 국가적 자원”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 지역신문은 신문제작 환경에 있어서도 독자들과 가까이 있다. 독자들이 쉽게 신문사를 방문하고, 전화할 수 있는 신문이 바로 지역신문이다.

■퓰리처상에 오르는 지역신문

미국에서 신문사와 언론인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퓰리처상이다. 퓰리처상은 월 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즈 등 대도시 일간지들이 주로 차지해왔었다. 그러나 2000년 퓰리처상에서는 매년 거의 고정 수상자나 다름없었던 뉴욕 타임즈가 한 부문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대신 심층보도와 설명보도 부문이 작은 지역신문에게 돌아갔다. 심층보도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문제를 다룬 뉴욕시의 대안주간지인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가 수상했고, 설명보도는 몬타나주에서 3만5천부를 발행하는 소형일간지인 그레이트 폴 트리뷴(Great Falls Tribune)의 에릭 뉴하우스 기자에게 돌아갔다. 뉴하우스 기자는 지역내의 음주문화와 알콜중독,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들을 단독으로 12회에 걸쳐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소형 지역신문들이 퓰리처상과 같은 권위있는 상을 받는 것은 결코 생소한 현상이 아니다. 노스다코타주에서 발행되는 3만8천부의 일간지인 그랜드 폭스 헤럴드(Grand Forks Herald) 역시 대형일간지들을 제치고 1998년 퓰리처상 공익봉사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 중부지역을 휩쓴 홍수로 신문사도 물에 잠겼고, 직원들의 집도 물에 잠겼지만, 이 신문은 지역주민들에게 뉴스를 공급하기 위해 학교교실과 백화점 창고로 옮겨다니면서 신문을 계속 발행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지역주민들에게 지역뉴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1998년 퓰리처상 논설상은 뉴욕시의 브롱스 지역에서 발행되는 의 버나드 스타인에게 돌아갔다. 이 신문은 1987년과 1988년에도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었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에서 발행되는 는 비록 발행 부수가 4만4백3부에 불과하지만 1996년 미국 신문디자인협회가 선정한 세계에서 최고의 디자인을 가진 22개 신문사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역신문이 대체적으로 어려운 취재환경,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발행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결과 작은 지역신문일수록 지역내의 문제를 과감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지역사회의 갈등을 덮어두고 외면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기득권세력을 비난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감추지 않는 작은 신문

하지만 진실보도를 위해서 지역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싸우는 신문들도 적지 않다. 한 예가 알라바마주 인구 2천7백73명의 린덴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이다. 이 신문은 서튼 부부가 만드는 신문이다. 총인구가 2만3천2백23명인 마렝고 카운티의 7천1백25세대에 우송되는 이 신문은 아내인 진이 취재와 편집을 맡고, 남편인 굳로가 편집하면서 지난 37년동안 발행되어 왔다. 이 신문은 1992년 이 지역 보안관의 공금횡령 사실이 주정부 감사에서 적발되었고, 보안관은 그 액수를 반환했다는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신문사 건너편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 보안관은 서튼 부부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였고, 평소 지역사회에서 신뢰가 두터운 공직자였다.

이 신문이 보안관의 횡령사실을 보도하자 대다수 지역주민들은 기사내용을 믿지 않았다. 서튼 부부가 충직한 보안관을 근거없이 모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사로 독자들의 항의전화가 이어졌고, 매주 1천달러 상당의 광고주문이 줄어들었다. 독자의 구독중단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보안관은 1995년 재선되었다.

그러나 결국 보안관은 은밀히 수사를 진행한 FBI에 의해 공금횡령과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제서야 지역주민들은 보도를 믿었다. 이 신문은 1998년 알라바마주 신문협회로부터 공익봉사상을 수상했고, 독자들에 의해 퓰리처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무려 5년이 넘게 좁은 지역에서 외롭게 지역여론을 거스르면서 진실보도를 고집한 작은 지역신문의 승리였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버나드 스타이너으 경우 그의 논설에 항의하는 독자들로부터 신문사가 폭탄테러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스타이너는 비록 지역신문이 지역사회정서에 반하는 기사를 싣는 것이 일시적으로 광고주를 잃을 수도 있고 독자들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문사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의 발행인도 지역주민들이 원하지 않지만 토론을 해야할 이슈들을 다루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시적 지역정서에 영합하는 신문은 지역신문이건 대형신문이건 발붙일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언론 풍토인 것이다.

미국의 지역 언론인

지역민을 위해, 그러나 때로는 지역여론을 거스르는 용기로

1999년 10월30일자 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을 빛낸 신문인 25명을 선정했다. 이 중에는 지역신문 발행인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윌리암 알렌 화이트였다.

화이트는 1944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캔사스주 엠포리아에서 라는 지역신문을 48년동안 발행했다. 그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언론인이 된 것은 27살이던 1896년이었다. 당시 대통령선거와 관련, 민주당 후보를 신랄하게 비난한 논설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신문은 특정후보를 자유로이 지지할 수 있다) 이 논설에서 화이트는 자신의 고향인 캔사스주가 인근 다른 주처럼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인으로 민주당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지적했다.

공화당 소속의 지역주민이 그의 논설을 스크랩하여 공화당 전국의장에게 전해졌고, 공화당은 화이트의 논설을 다시 인쇄해 전국적으로 배포했다. 그의 논설은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고, 공화당 후보인 윌리암 매킨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선거 후 화이트는 연방정부의 고위직 제의를 받았지만 1944년 사망할 때까지 엠포리아에서 남아 지역신문을 만들었다. 그는 비록 지역신문 발행인이었지만 역대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조언을 구했던 언론인이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역신문인을 꼽는다면 아이오와주 아메스에서 발행되는 의 발행인 마이클 가트너일 것이다. 가트너는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자로 출발해, Des Moines Register 편집국장, USA Today 사장, NBC News 사장을 역임한 미국 최고 경륜의 언론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1993년 NBC News 사장직을 그만두고 발행 부수 1만부의 의 논설위원직을 맡았다. 가트너는 친구 한명과 함께 1986년 퇴직금을 털어 이 신문을 매입했었다. 아메스로 돌아온 가트너는 논설위원으로서 풋내기 기자들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한편 그의 신랄한 논설 때문에 가트너는 지역사회 유지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논설위원으로서 가트너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성역없이 지적했고, 그 결과 지역사회 지도자들인 대학총장, 기업인 등으로부터 지역사회의 부정적인 점만을 부각시켜 지역사회의 발전과 안정을 저해하는 인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신문이 지역의 단순한 후원자나 응원자(booster or cheerleader)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해온 가트너는 이 신문에 게재한 논설로 199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수상심사에 오른 그의 논설은 지역내의 공원문제, 시청주차장 문제 등 지역문제를 다룬 것들이었다.

1997년 발표에 의하면 전형적인 미국 지역신문 기자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백인으로 평균나이는 26세였다. 이들이 일하는 신문의 평균 발행부수는 7천4백99부이고 취재기자는 3명이다. 지역신문 기자들의 직업상 불만은 낮은 급료가 56.2%, 과도한 스트레스가 44.4%, 긴 근무시간이 36.5%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83%가 신문기자라는 직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미국의 지역신문 발행인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유능한 지역언론인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역신문 발행인들은 지역신문이 비록 규모도 작고 보수도 낮지만 대형일간지 보다는 훨씬 근무 분위기가 좋고, 기자로서 능력을 발휘할 많은 기회가 제공되며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미국에서도 지역신문을 경시하기는 한국과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신문들은 철저히 취재보도 경력에 따라 기자를 채용하기 때문에 큰 신문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가진 젊은 기자들이 경험을 쌓기 위해 지역신문에 우선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역신문 기자들은 이직율이 높다. 더욱이 언론학과 졸업생중 신문 기자직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고, 광고·홍보·방송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지역신문의 인력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