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당진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여 있는 마을이 있다. 본지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환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삽교천 서쪽으로 드넗게 펼쳐진 소들강문 한가운데에 우강면 성원리가 위치해 있다. 누렇게 익은 벼를 추수하느라 마을은 요즘 무척 분주하다.
성원리는 물론이고 인근에 강문리, 소반리, 대포리, 공포리 등 주변이 온통 평야지대다. 그 중 성원리의 경지면적은 약 45만 평에 이른다. 푸릇푸릇 모가 자라나는 때부터 가을걷이에 이르기까지 성원리의 모든 계절은 우강평야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무척 평화롭고 아름답다.
주민과 출향인의 마을 사랑
현재 성원리에는 63가구에 13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은 3개 반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성원리와 멀지 않은 곳에 우강초등학교가 위치해 있어 과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고 청년회 활동도 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 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애정만큼은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마을을 떠나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같다.
10년 전에는 성원리 들판에 대형 양계장이 추진돼 주민들의 시름이 깊었던 적이 있다. 당시 계사 신축허가까지 난데다 법정싸움까지 이어졌으나, 성원리를 비롯해 우강면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양계장 신축을 무산시켰다. <본지 제1053호 ‘우강면 계사 갈등 해결’ 기자 참조>
또한 2014년 4월에는 성원리 출신 출향인 이원만 씨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마을입구에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과 함께 마을잔치를 열기도 했다. 이 씨는 그가 운영하는 단추제작 회사의 이름을 ‘성원버튼㈜’라고 지을 만큼 고향 사랑이 남달랐다. <본지 제1005호 ‘출향인이 세운 마을 표지석’ 기사 참조>
최근에는 마을에서 공연이 펼쳐져 온 동네 주민들이 하루종일 즐겁게 노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8월 26일 성원리 마을회관 앞에서 도솔문화예술 한마당 행사가 진행됐다.
도솔문화예술단에서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는 김춘근 전 성원리 이장의 도움으로 색소폰·하모니카·난타 연주를 비롯해 밸리댄스 공연 등이 펼쳐졌으며, 주민들은 저녁시간까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한바탕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특히 마을 부녀회에서는 거동이 불편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을 포장해 집집마다 직접 배달하는 등 주민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챙겼다.
김춘근 전 이장은 “마을에서 이런 공연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그동안 코로나19로 주민들이 잘 모이지 못하고 힘들었는데, 마을에 활기를 찾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윤순화 이장과 김재호 지도자, 한선옥 부녀회장의 노고가 컸다”고 덧붙였다.
갯벌 간척해 이룬 마을…지명으로 남아
한편 성원리는 옛날에 성(成) 씨인 한 사람이 간사지에 둑(언)을 쌓아 마을이 이뤄졌다고 해서 ‘성언(成堰)’으로 불리다 ‘성원리(成元里)’가 됐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전까지 면천군 범천면에 속한 마을이었는데, 상신대리, 노변리, 이원리, 황원리, 협원리, 하신대리 일부를 병합해 ‘당진군 범천면 성원리’가 됐다가 1942년 10월 범천면이 우강면으로 바뀌면서 우강면에 속한 마을이 됐다.
여전히 과거 병합했던 마을 이름은 자연부락으로 존재하며, 현재 성원리에는 황원, 노변, 이원, 협원, 하신대(아래새터말), 상신대(위새터말), 새터말 등 7개 자연마을이 있다. 황원(黃元)은 250여 년 전 갯벌이었던 곳을 황 생원이 둑을 쌓아서 이룬 마을이라는 뜻으로, 황샌, 황언, 황원리 등으로도 불린다. 노변(蘆邊) 또한 약 250여 년 전 노(蘆) 씨와 변(邊) 씨가 개펄을 간척해 울타리를 치고 살기 시작하면서 그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 노변이라고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원(李元)은 예전에 이 시가 언(堰)을 막아서 만든 마을이라는 뜻이며, 이두사·유두선이라고도 한다. 또한 황원 옆에 위치한 협원(峽元)은 여러 사람이 협력해 언(堰)을 쌓아 부락을 간척했다 하여 ‘협언’으로 불리다 ‘협원’ 또는 ‘섭원’이 됐다.
하신대(下新垈)라 불리는 아래새터말은 새터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며, 상신대(上新垈)인 위새터말은 새터말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본래 이원사 동북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을 신대(新垈), 즉 새터말로 불렀으나 아래새터말과 위새터말을 합쳐서 현재는 그냥 ‘새터말’ 하나로 부르고 있다.
시욱지·강다리…더는 잡히지 않아
마을에는 ‘당뿌리’로 불리는 야트막한 야산이 있다. 이곳에는 서낭당이 있어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 적에는 우강면장이 이곳 당뿌리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손용태 전 노인회장은 “옛날에 방조제를 막기 전 천수답이었던 시절엔 예당저수지 물을 끌어다 써는데, 성원리는 가장 끝에 있는 마을이어서 물이 닿지 않을 때가 많았다”며 “가뭄이 들면 당뿌리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말했다.
김춘근 전 이장은 “당뿌리에 절도 있었다”면서 “지금도 기왓장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땐 내 키도 작았던 데다 주변에 산이 없어 당뿌리가 무지 높아 보였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참 작은 산”이라고 덧붙였다.
지명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곳은 본래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으나 오래전부터 소규모 간척사업이 이뤄져왔다. 특히 삽교호방조제가 막힌 뒤로는 바다였던 마을이 농경지로 변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됐다.
윤순화 이장은 “시커먼 시욱지(토종돌고래인 상괭이)가 마을 앞 바다에 물살을 타고 왔다 갔다 했다”며 “숭어, 준치, 실치, 망둥이, 이합, 거물치, 강다리, 황발이, 농게 등 엄청나게 많은 생선과 해산물이 잡혔다”고 말했다.
김춘근 전 이장은 “그 중에서 조기새끼처럼 생긴 강다리가 정말 맛있었다”면서 “지지면 노랗게 기름이 뜰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더 이상 옛날 그 맛을 볼 수 없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이 더욱 화합하고 소통하면서 살기 좋은 마을로 발전해갔으면 합니다. 한 사람의 어려움에도 귀기울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장이 되겠습니다.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윤순화 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