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처럼 투박하고 단단한 남쪽 남자와

엄동설한에 핀 해맑은 꽃 같은 북쪽 여자

손꼽아 이제는 마흔다섯해....

마흔다섯해 긴긴 세월

나에게는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다

그 어느 행성에 보낸다 해도

이제는 가닿고 남았으련만

제멋대로 부는 바람에 띄워도

이제는 온 지구를 돌고돌아

주소에 씌여진 내 할머니 집 뜨락에

몇번이고 몇번이고 내려앉았으련만

아, 장벽이 없다면

걸어서도 사흘길에 가닿을

나의 아버지 고향땅에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있는 편지

세상을 하직하는 침상에서

고향하늘쪽으로 머리 돌려달라시며

어린애마냥 목놓아 할머니를 부르다가

부르다가 부르다가 눈도 감지 못한채

이 아들에게 맡기고 간 아버지의 편지여

대답해 보라 세계여

하나의 혈육이 둘로 갈라져

마흔다섯해 긴긴 세월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하는

이런 비극의 땅이 또 어데 있는가

이 시는 남한의 시인 신동호씨가 어느 잡지에 소개한 북한시인 장혜명씨의 시다. 신동호 시인은 지난 6월14일부터 1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6.15선언 한 돌 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에 참가했다가 거기서 만난 북한시인과 그들의 시를 이 잡지에 소개하였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편지를 소재로 분단의 아픔을 엮어낸 시인데 우리에게도 낯익기만 한 풍의 시다.

소개된 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부러웠어요

꽃리봉 달던 시절

노란 민들레 수놓은 방천우로

춤추며 날으던 종다리 나래가

키가 한 더 자랐을 땐

눈길을 떼지 못했어요

끝없이 넓은 바다 저끝까지

자유로이 날으는 흰 갈매기 나래 보며

봄들판의 내물소리

뒤동산의 빨간 꽃숲

내 마음 유혹할 때에도

곁눈질 모르고 깃을 친 그 나래

그 나날이죠 내 가슴에

봄물오른 새싹처럼

파릇파릇 내 사랑

푸른 잎 펼친 것은

신흥국 <쌍나래 designtimesp=15955>따라 만나 분단 위에 지은 집

그런데 정작 마음에 와닿는 것은 북녘시인들을 소개하며 끝을 맺은 신동호씨의 글이다. <...그러고 보니 제가 그리워했던 것은 금강산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움의 끝에서 금강산에 올랐고 사람들을 만났으니 이제는 여러 사람의 손을 잡고 기쁘고 즐거운 길을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작고하신 문익환 목사님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통일은 이미 됐어!” >

금강산의 가운데자락 쯤, 금강산 물줄기의 중간자락 쯤. 한토막의 땅에서 산맥 흐르고 흘러 지나는 곳에 물맑은 동리 당진읍 수청리가 있다. 최근에 창간된 ‘민족21’이라는 잡지 8월호를 받은 때쯤 수청리에 사는 나상흠·김순영씨 부부를 만났다.

그곳에는 선진건설이라는 건축회사를 운영하며 바쁘고 강단있게 살아가는 남한 청년 나상흠(32세)씨와 곱고 교양있는 북한 처녀 김순영(27세)씨가 갓 만들어낸 작은 공동체가 있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지난 5월26일 결혼한 부부는 보통의 신혼살림과 다름없이 오손도손 깨가 쏟아지는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남북사이에 있는 군사분계선과 같은 그 어떤 장벽도 놓여있지 않았다.

“불편한 건 전혀 없어요. 처가 식구들이 모였을 때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바람에 제가 갑자기 왕따를 당하게 된다는 것 말고는요. 오히려 남쪽에 일가친척이 없기 때문에 저를 든든하게 여기시고 친아들, 친남매처럼 대해주셔서 좋기만 합니다.”

“남한에 서구문물이 많이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 전통의 보수성이 강한 것은 남북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산천도 한가지고 생활풍습도 비슷하잖아요.”

부인 김순영씨는 좀 더 큰 안목으로 두 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 부부를 보며 뭔가 색다른 사연이 있으리라는 얄궂은 기대를 가졌던 나 자신이 도리어 민망해진다.

“저는 당진이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고 당진에 내려와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친구들도 그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아마 이것이 인연인가 봐요.”

김순영씨가 던진 ‘인연’이라는 말에 철의 장막보다 더 무섭고 견고해 보이던 군사분계선의 실체가 모래집같은 허상임이 느껴진다. 인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은 이산가족의 끊을 수 없는 그리움만큼 강한 것인가. 김순영씨는 순간 이웃집 새댁처럼 가까워져 버린다.

부부 사이에 놓인 장벽은 엉뚱하게도 언어장벽이었다.

순우리말을 그대로 살려쓰고 있는 북한과 세계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일찌감치 영어로 된 외래어를 섞어쓰고 있는 남한의 언어문화가 유일하게 이들 부부가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았음을 느끼게 하는 분야다.

“북한에서도 영어나 한자를 안 배우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생활에서 이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잊어버리기 십상이죠. 세계화시대에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고운 우리말을 잊지말고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4년전 일가족과 함께 탈북을 감행한 김순영씨.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물질적으로 윤택하고 충분히 배우며 살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기관에 일일이 보고해야 하고 그 관리의 사슬 아래 사는 것이 싫어 목숨을 건 탈북에 나섰다. ‘누구나 고르게 나누어 갖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상은 좋으나 현실이 따르지 않는 사상’이라고 조심스레 북쪽을 진단하는 그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사생활을 누릴 수 있는 데다가 하던 일의 방향을 바꿀 수도, 새로 선택할 수도, 과감히 도전할 수도, 결과를 누릴 수도 있는 ‘자유’의 세계가 그리웠노라고 말하는 그녀. 김순영씨의 말은 우리가 하찮게 누리며 사는 개인적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또 한편 그녀의 말에서는 어떠한 조건이 인간의 행복을 더 잘 보장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을 훨씬 진지하게 하며 살아왔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는 그 근저에 많이 버는 것, 많이 갖는 것만이 미덕이라는 유일한 신념을 조장하고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개인적인 차원에만 묶어놓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한 행복이나 다른 사람, 인류전체를 생각하며 살아가자면 신앙이나 또다른 철학과 신념의 도움이 필요하다.

1년 여에 걸친 연변 도피생활과 서울에서의 방송 리포터생활, 결혼알선업체에서의 직장생활을 거치는 동안 김순영씨는 이 사회에 많은 부분 적응이 되었다.

가장 어려운 언어의 장벽은 “상처받지 않으려면 열심히 익혀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어느덧 넘어섰다.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함께 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 있다. 사람을 쉽게 믿고 동료로 생각해 버리는 태도였다. 좋은 인상,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배워야 했다. 그리고 김순영씨가 본 남한의 남성들은 매우 유약하고 여성에게 의존적이었다.

그러나 김순영씨가 소개로 만난 나상흠씨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주관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이 뚜렷해 보였고 믿는 바를 소신껏 밀어부치는 저돌적인 사람이었다. 그들의 결혼도 그렇게 저돌적으로 진행되었다.

남남북녀.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단단한 남쪽의 남자와 엄동설한에 핀 해맑은 꽃과 같은 북쪽의 여자가 인연으로 만나 그 가족들끼리 허물없이 새로운 일가를 이루었다.

감자꽃 뒤덮인 회령 옆에 청남산 밑자락 나루가 있는 마을 청진. 청진에서 당진으로 온 것이 인연은 인연인 것도 같고 당분간은 볼 수 없을 고향과 동무들, 부정할 수 없는 분단의 장벽이 아마도 오랫동안 가슴아플 것도 같다.

하지만 밖에서 강한 만큼 아내에게는 부드러운 남편 나상흠. “안녕하세요” 인사 한마디 하고는 TV앞에 목석처럼 앉아있는 남한의 다른 사위들같은 그런 사위 얻으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부모님의 우려를 말끔히 씻으며 장인, 장모께 친아들보다 더 싹싹하고 살갑게 굴어 일가없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사위 나상흠. 그가 듬직하고 미더워 어느덧 결혼 2개월. 김순영씨는 생면부지의 당진에서 그저 평범한 자유시민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