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버려야 할 열가지
새로운 21세기가 밝았다. 뉴 밀레니엄에 대한 희망과 꿈은 우리 모두에게 각별하다. 우리는 새천년의 가까운 시일안에 선진국으로의 진입과 통일된 조국을 열망하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그러나 이러한 명제들을 앞당기기 위해선 우리가 빨리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이기주의’이다. 사회가 급속도로 산업화·도시화 되면서 대인관계에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간데없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사상이 토착화 되고 말았다.
둘째로는 소위 ‘코리안타임’이다. 우리에게 시간관념이 없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인격과 직결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세째로 ‘사대주의 사상’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겐 한없이 강한 아주 몹쓸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강대국 앞에서 주권국가로서의 면모는 아득히 먼 희망사항일 뿐인가.
네째로 ‘조급증’이다. 일제치하에서 굶주리고 억눌려 살아온 우리 민족이 60년대 중반 이후 근대화·산업화의 기치를 높이고 발빠르게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밤낮을 안가리고 오직 앞만 보고 치달아 오던 우리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빨리빨리, 대충대충이 안전불감증을 낳고 질보다는 양에 치중해 거품경제성장을 이뤄 세계 13위권 경제대국이 하루아침에 IMF라는 낭떨어지로 곤두박질하고 만 것이 아니겠는가.
다섯째 ‘과시욕’이다. 3공화국 이후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권력자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졸부들을 양산해냈다. 이들이 국내외를 휘젖고 다니며 외화를 낭비하고 빈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는 점은 불행한 일이다.
여섯째 ‘체면중시성’이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체면을 중시하는 민족도 없을 듯 싶다. 자신의 생활정도와 사정과는 무관하게 체면 때문에 속으로 멍드는 우를 범하는 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일곱째 ‘냄비증(?)’이다. 냄비는 쉽게 불에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린다. 우리의 국민성도 이와 비슷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일이 발생하면 쉽게 흥분해 난리법석을 피우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사건의 예가 그렇다. 흥분보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여덟번째 ‘매판 부르조아 사상’이다. 우리에겐 좀 생소한 좌경분자들의 용어같은 느낌이나 이의 뜻은 강대국의 힘에 빌붙어 정치권력을 유지시켜나가는 권력집단을 말한다. 우리의 역사상 군사정권시대에 엄연히 있었던 사상이다. 새천년에는 이러한 불행이 다시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홉번째로 ‘배금주의’다.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고 죽은 자도 살리는 것이 돈이라지만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돈 때문에 인정과 우애와 사랑의 나무가 말라 죽어가고 있다. 빈자와 부자와의 갈등, 상대적 빈곤감, 인심은 더욱 메말라만 간다. 경제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부의편중, 황금만능주의 사상을 바로 잡는 일에 국가가 적극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양심’이다. 거짓말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양심만큼은 속일 수 없다 했다.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까지 열거한 고쳐야 할 사항들이 어쩌면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편협적으로 보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랬으면 하는 심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민족의 저력은 국난에 처했을 때 큰 일을 앞두고 하나로 결집되는 것을 보아왔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가 되리라 확신한다. 아니 이런 행사 때만이 아닌, 새천년에 우리 민족은 불신과 갈등을 털어버리고 화합과 민족의 정기를 다시 한번 꽃피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