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01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당진출신 형제법관 ‘탄생’
…강릉지청에 재직중인 촉망받는 젊은검사다. 이들 두형제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학비를 조달하는등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입신의 길에 들어선 의지의 젊은이들이라고. 한편 두아들을 법관으로 키워낸 김창희…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191건 · '어려운 형편' · 문화·교육 · 최근 기사부터10 / 10쪽
1997.12.01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강릉지청에 재직중인 촉망받는 젊은검사다. 이들 두형제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학비를 조달하는등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입신의 길에 들어선 의지의 젊은이들이라고. 한편 두아들을 법관으로 키워낸 김창희…
1997.10.20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금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가뜩이나 지역경제가 어려운 형편에서 행정기관이 나서서 내핍을 강조해야 할 시기 아니냐”며 “더구나 기본예산을 보완하거나 불요불급한 사정이 있을 때 세우는 추경예산에까지 이례적으로 군민체육대회 예산을 …
1996.11.11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을 갖게 될 성산1리 마을회관에 70만원을 후원, TV를 들여 놓았으며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향의 어린 청소년들을 위해 종친들과 함께 장학회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는등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났지만 마음만은 늘 고향을 생각하는 …
1996.09.23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영전자에 다니는 어머니 김경희(34세)씨와 언니,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계속해서 향상된 기록을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육상대회에서 150m를 넘은 서세화양은 1위를 차지한 학생과 같은 기록을 냈지만 …
1996.05.2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장학회는 지난 91년 고대면 진관2리에 사는 독지가 김영우(58세)씨가 형편이 어려운 고대면 출신의 우수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자 1천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면서 운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94년도부터 올해까지 총 5백2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김영우…
1996.03.18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송악] 기지시리 새마을부녀회(회장 한영자)는 5일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성실히 생활하는 송악고등학교 노은정(1학년), 이은수(2학년) 학생에게 각 20만원씩 4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격려했다. 이 장학금은 기지시리 부녀회원 60여명이 폐품수집과 1…
1995.10.02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지 못해 당시 인기가 좋았던 경상계에 지원을 하게 됐던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학한 대학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낯선 서울서 군복을 까맣게 물들인 옷 하나를 사서 사철 단벌로 입고 다녔던 그는 남의 집 가정교사로…
1995.09.18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을 많이 했다. 50년대에 당진 대학생회 회장으로 계몽사업을 벌였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당진학사에서 사무장으로 일한 적도 있다. 자유당때 잠시 정치권에 몸담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에겐 배운 것 만큼의 관운이나 재산운은 …
1995.03.06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도 있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8남매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군 입대를 전후해 순회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생활방편이 되진 못했다. 차재근씨가 건설업계에 몸담은 건 7~8년전이었다. 처…
1995.03.06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도 있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8남매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군 입대를 전후해 순회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생활방편이 되진 못했다. 차재근씨가 건설업계에 몸담은 건 7~8년전이었다. 처…
1994.02.0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땅에 젊음을 묻고 살았고, 누구보다 합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젊은시절 어려운 생활이긴 했지만 남 탓할 일 없이 적극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한가지 가슴에 묻어 온 슬픔이 있긴 있었다. 6.25때 한국군이 남하할 때 군에 입대한 할아버지는 대구 팔공산…
당진시대 아카이브에 보관된 기사입니다. © 당진시대. 정식판은 각 기사의 원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