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2.2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윤중하 합덕 도곡리
…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그때의 광경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제대후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의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를 맡으면서 더욱 이때의 결의는 굳어졌다. 마을이 잘 살면 나라도 부강해진다는 생각뿐 “너의 비리도 용서할 수 없지만 나의 부정은 더욱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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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건 · '고향' · 지역사회 · 1995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995.12.2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그때의 광경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제대후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의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를 맡으면서 더욱 이때의 결의는 굳어졌다. 마을이 잘 살면 나라도 부강해진다는 생각뿐 “너의 비리도 용서할 수 없지만 나의 부정은 더욱 용…
1995.12.2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로 주인이 방세를 받지 않아 간신히 한달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평택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마흔이 되기전 부인과 사별했다. 아들 둘을 낳았었는데 둘다 생후 일주일도 못돼 세상을 떴다. 운전, 막노동, 농사일, 음식점 주방장등 안해본 일이 없지만 그 당시…
1995.10.2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돌다가 한 개 널판지로 되돌아올 때 내 부서진 어깨 부추켜 버리고 떠난 고향 부둣가로 이끌어주는 밧줄 그대가 한 척의 조그만 예인선이라면 좋겠네
1995.10.0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ꡒ고향이 어딥니까?ꡓ 첫대면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말중에 이 물음은 빠지지 않는다. 공통분모 한가지라도 찾아질 때 훨씬 관계는 수월해지고 대화도 풍성해지며 우리 한국인에겐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사실만큼 믿음가는 요소도 없기 때문이다. 당진버스터미널 …
1995.08.21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렇게 취임소감을 대신했다. 국민학교 때부터 4H활동을 시작, 스물다섯에 고향인 매곡리 이장을 지냈던 그는 84년 새마을 중앙본부(현 중앙협의회)에 공채로 들어간 이후 92년까지 당진군지회 사무국장으로 역임하는등 줄곧 새마을운동의 한 가운데에서 잔뼈가 …
1995.06.2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세탁소 일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진이 고향인 이씨는 스무살 때 서울에 가 양복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다지 내키던 일은 아니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꿋꿋이 봉제일을 해왔다. 이씨는 스물일곱에 지금의 …
1995.05.01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생계위협이 닥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1년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땅을 영원히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동안의 고통은 감수해 내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왜 하필 이곳에 사설공원묘지가 들어선다는 건지, 한적하고 후미진 곳도 얼마든지 있을텐데 3개 마…
1995.04.24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을 찾아내 주면 평생 고객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유씨는 4년전 고향인 합덕으로 내려왔다. 어머니가 위중해 함께 일을 거들어야 했다. 반대하던 어머니도 오랜 타향생활에 지쳐있던 그를 반겨주었다. 한때 호된 고생을 겪으며 돈 버는 일만이 최고의 …
1995.02.0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 먹는 사람이나 도박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금천 2리 향우회가 있는데 고향을 떠난 사람들과 여기 남아 있는 40~50대층들의 모임입니다. 이들은 1년에 한번씩 모여서 경로당 운영자금도 내놓고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솔선해서 해결하곤 하지요” 20…
1995.01.30 · 지역사회 · 당진시대
… 가족을 초청하였기에 4박5일동안 인정많고 훈훈한 기가 흐르는 아버지의 고향땅을 사이토씨는 난생 처음으로 밟으면서 한국의 혼을 마음껏 마음속 깊이 마셨던 것이다. 한국의 사촌 17형제가 숙모님(사이토씨 어머니)께 큰절로 인사를 올릴 때 언어소통이 안되…
1995.01.2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혀 쇠퇴했지만 흥겨웠던 농악놀이를 보면서 자란 이 마을 청장년들이 쉽게 고향을 등지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리라. “마을 잔치날이나 명절때는 말할것도 없고 모를 심다가도, 벼를 베다가도 풍물놀이를 했었어요. 아낙네들도 풍물소리가 들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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