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2 · 지역사회 · 강대원
기획취재 사라지는 마을 열세번재… 송악면 중흥리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있다. 송악면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리는 3개반 가량이 개발될 예정인데 이곳에는 대부분 농사를 기반으로 몇 세대에 걸쳐 삶을 영위해온 주민들이 살고 있다. 90년대 동부제철이 들어서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중흥리 일대가 ‘흥(興)’하기 시작했지만 원주민…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20건 · '그때 이곳' · 2008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08.12.22 · 지역사회 · 강대원
…있다. 송악면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리는 3개반 가량이 개발될 예정인데 이곳에는 대부분 농사를 기반으로 몇 세대에 걸쳐 삶을 영위해온 주민들이 살고 있다. 90년대 동부제철이 들어서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중흥리 일대가 ‘흥(興)’하기 시작했지만 원주민…
2008.09.22 · 지역사회 · 최운연
…뜸, 신촌말, 회태정착지, 오얌(오야미), 삼거리, 심상굴 등이다. 또 이곳에는 해발 136미터의 도곡리와 소소리 경계에 있는 둔봉산이 있다. 둔봉산은 고종 31년(1894) 갑오동란 때 관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또 퇴미산이 있는데 백미산이라고도 불리…
2008.09.15 · 지역사회 · 최운연
…살고 있다는 이재훈(62)씨는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의 아들들도 이곳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인근 복운리와 수원 등지에서 일하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땅을 외지인들에게 다 팔고 이제는 집과 집터만 남아 있다. “시골에서 농사지…
2008.09.08 · 문화·교육 · 우현선
…이뤄진 휴양림에는 수령 100년 내외의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소나무는 고려때부터 궁제와 배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해왔는데 도남벌이 심해져 왕실에서 특별히 관리했으며 1965년부터 충청남도가 관리하고 있다. 다양한 유전변이를 갖고…
2008.09.01 · 정책·행정 · 당진시대
… 지으려면, 이웃을 만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도로를 건너야 한다. 그때마다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못 다니게 할 수도 없고 우리로써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교통량이나 도로여건 교통사고 등의 상황을 감안해서 신호등을 설치한다던가…
2008.09.01 · 인물·동정 · 강대원
…었다. [인터뷰] 서산시문화관광해설사 ‘조성옥’씨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그때 그때 달라요” “아침볕을 받은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젊은이의 그것과 닮아있고 점심때에는 중후한 미소를, 노을질 무렵에는 노란 빛이 감돌면서 달관한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를 떠올…
2008.08.25 · 문화·교육 · 강대원
…연을 맺은 데에 남다른 사연이 있다며 소개했다. “원래 사진을 좋아해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 무주리조트에 출사를 갔다가 우연히 산악자전거대회를 보게 됐는데 그때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이후 황 대표는 직업으로…
2008.07.21 · 문화·교육 · 김태숙
…, 연주 등이 이어진다. 2일부터 이틀간 연꽃체험과 토산물 직거래장터도 이곳에서 열린다. “당진에는 문화의 토양이 너무 약해요. 지금도 모든 것이 산업화에 밀리고 있죠. 하지만 머지않아 이 굴뚝들을 사람들이 거부할 날이 올 거예요. 아토피, 두통, 우…
2008.07.07 · 지역사회 · 우현선
… 대여섯 차례 섬과 육지를 오가는 여객선이 잠시 정박할 뿐이다. 최씨는 그때만해도 네땅 내땅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았다고 했다. 200호가 넘는 집이 야트막한 돌담을 사이에 두고 한 집처럼 살았다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웃들이 하나둘…
2008.06.16 · 문화·교육 · 강대원 기자
…에서 당제를 지냈다는 얘기가 있어서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요. 이곳저곳 고서가 있는 곳에 가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아직 정확한 연도를 찾진 못했어요. 과거 면천이 현이었을 당시 성곽이 있었고 몽산에도 그러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
2008.06.09 · 산업·경제 · 김태숙
…마주칠 일이 없었을 두 아이는 먼 훗날, 2008년 6월3일에 자신들이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노래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 5월30일, 축산단체협의회와 농민단체협의회, 민주노총당진군위원회, 문화사랑, 당진참여연대, 당진환경운동연합, 어린이책시민연대가 모…
2008.06.09 · 산업·경제 · 강대원 기자
… 오픈했습니다. 원당리 주택단지 쪽에 회를 드실 만한 곳이 많지 않아서 이곳에 가게를 열게 되었는데 이제 개업 1주년이 되었네요.” 당진이 고향인 동해수산의 이영도(32) 대표는 일산과 인천 쪽 활어횟집에서 실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에 창업…
2008.06.09 · 지역사회 · 강대원 기자
…있어. 예전에 많이들 신선바위에서 놀고 그랬지. 지금은 팔각정이 있지만 그때는 없었거든. 이제는 수풀이 우거지고 등산객들도 (신선바위를) 찾지 않아서 산 속에 묻혀 있을 거야.” 4평 남짓한 평상 같은 바위라고 조성희 할머니는 신선바위에 대해 설명한 …
2008.06.02 · 지역사회 · 강대원 기자
…종 놀러오곤 했어요. 그러다가 한 동안 오지 못했는데 병원을 열기 위해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다시 당진을 찾게 됐어요. 아주 오랜만에 당진에 왔는데 그때와 너무 달라진 모습에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지난 5월 14일 정미면 천의리에 천의의원을 개원한…

2008.04.28 · 환경·안전 · 최운연
…던 북창포는 지금은 하천으로 변해버려 예전의 모습은 볼수 없었다. 아니 이곳이 과거 당진의 대표적인 포구였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보잘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3대째 이곳 북창포에서 살고 있다는 김창덕(75, 우두3리, 사진) 노인회장은 북창…
2008.04.21 · 정책·행정 · 최운연
…한다. 썰물때가 되면 넓은 갯벌과 바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옛부터 이곳 한진리 어부들과 어촌주민들은 이곳 영바위에서 굴과 바지락을 캐왔다. 한진포구 주민들은 이곳에서 캔 굴과 바지락을 시장에 내다팔거나 쌀을 사기도 했다. 어부들은 영바위를 지표삼…
2008.04.14 · 산업·경제 · 최운연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 적서, 돌개, 선녀굴마을 등이 있는데 지금은 이곳을 통칭해 적서리라 한다. 적서리는 ‘붉은 쥐가 밭에 내리는 형국’이라 해서 ‘붉쥐’ 또는 ‘붉은쥐’라고 불리다가 후에 ‘적서’리로 개칭되었다. 적서리에는 현재 약 300여명의…
2008.03.24 · 문화·교육 · 당진시대
… 11시까지 서너 시간 환담을 나누면서 서울서 온 중학교 친구가 어떻게 이곳 당진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70년 초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당진에 와서 친구들을 사귀었다고 대답한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우정을 계속…
2008.03.03 · 문화·교육 · 전수진
…없이 힘들었다. 종종 무리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직장선배들의 조언인 ‘주는 만큼 돌아온다’는 말을 한 번 더 마음에 새겼다. 면천면 자개리가 고향인 조씨는 “한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

2008.02.18 · 문화·교육 · 전수진
…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강사 제의를 받은 강씨는 사실 지난 3년 동안 이곳의 수강생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취미삼아 시작한 댄스스포츠는 강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취미삼아 댄스스포츠를 시작했어요. 그전에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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