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뾰족한 대책없어 “비닐만 아니면 갈아 엎고 싶다”
쌀값 파동으로 농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배추와 무값이 떨어져 농민들이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이미 거의 모든 무, 배추가 출하돼야 하지만 올해는 배추가 50~60원을 밑도는 등 가격이 워낙 형편없는 바람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수확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값이 내려간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채소소비가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구식 식생활로 무, 배추소비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다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가게들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
여기에 김치냉장고의 대중화도 소비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치냉장고가 일반화되면서 한철에 많은 김치를 준비하지 않고 필요할 때 조금씩 김치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가 올해만도 100만대 넘게 팔렸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채소 출하시기 조절이 맞지 않은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볼 때 무와 배추는 지역별로 출하시기가 다른데 이를테면 여름배추는 강원도 지역의 고랭지에서 대부분 생산되고 이어서 김장철을 앞둔 가을에는 경기와 충청지역의 배추가 시장에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생육이 좋지 않아 강원도 고랭지 채소의 출하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충청지역과 겹쳐 공급과잉으로 값이 곤두박질 쳤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민들의 사정이 말이 아니다. 고대면 옥현리에서 3천여평의 밭에 무와 배추를 심었던 강사용(48세)씨는 “요즘 시세로는 팔아봤자 하차료와 경매비,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오히려 더 손해를 본다”며 “당장 트렉터로 밭을 갈아 엎고 싶은 심정이지만 비닐문제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못팔고 손해보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농협 빚을 갚을 수 없어 더 막막하다”는 것. 여름철 잎담배와 배추농사를 지어서 최소한 이자라도 갚을 수 있었는데 그것마저 어렵게 됐으니 늘어날 빚만 걱정이다.
옥현리 강사윤(70세)씨는 “올 여름과 가을 가뭄으로 물 퍼 나르느라 얼마나 고생하며 키운 것들인데 여지껏 한포기도 못팔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정부는 급히 농협을 통해 배추 7만톤을 사들이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농협과 계약재배한 극히 일부 농가에게만 해당돼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당진군 산업수산과 유통양정계 윤재돈씨는 “우리군도 도시지역소비자 연결과 음식점 배추 더먹기 등 소비촉진운동을 하고 있지만 답답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소비가 줄어드는 등의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농민들이 계약재배를 기피하고 대체작물로의 전환을 외면한 채 투기성 짙은 배추농사만을 고집하고 있어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농민들이 자초한 결과라는 게 군 관계자의 말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실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강사용씨는 “대체작물 재배를 권장하려면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밭농사 직불제 등의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 놓고 해야 한다”며 “그런 준비도 없이 무조건 대체작물을 심으라면 가격보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다른 작물을 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당진지역에서는 544ha(3천512농가)에서 연간 5만9천여톤의 배추가 생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