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상징하는 기지시줄다리기는 500년의 전통을 지닌 의식이다. 줄을 만들고 다리는 모든 과정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모여야 가능하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줄다리기에는 그런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총 6개의 이야기로 기지시줄다리기를 지켜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지면 보도와 영상으로 함께 기록될 예정이다.
※ 이 기사는 2025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취재·보도합니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 줄이 들썩이기 전, 먼저 흥겨운 장단이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꽹과리와 북, 장구, 징이 울려 퍼지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절로 빨라지고, 축제의 열기는 점차 무르익는다. 그 중심에는 늘 풍물패가 있다. 소리로 사람을 모으고, 장단으로 흥을 올리며 공동체의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풍물은 줄다리기와도 똑 닮았다. 줄을 끌기 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첫 연결고리도, 그 긴 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지막 기운도 풍물에서 시작된다.

“하다 보니 재미를 느꼈어요”
기지시줄다리기의 시작이자 끝인 ‘풍물’. 이제는 풍물이 인생의 친구가 된 기지시줄다리기 본부농악대 이천용 씨를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풍물을 좋아했던 그는, 기지시줄다리기 줄을 꼬러 갔던 현장에서 보곤 풍물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해 20여 년 가까이 기지시줄다리기 본부농악대에 속해 풍물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장구로, 그 다음에는 북을, 최근에는 꽹가리를 치기 시작했다고. 그는 “처음엔 조금만 하다가 동네에서 칠 정도가 되면 그만둬야겠다 생각했다”며 “하지만 다른 곳 가기도 싫고, 기지시줄다리기 본부농악대가 재미있어서 계속 여기서 풍물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장구를 놓고 쳐보라고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감당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1년 정도 다니니 감도 생기고, 그 뒤부터는 한 대목씩 하다 보니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사람 모일 수 없었던 코로나19가 힘들었어”
이제 풍물은 그에게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자 유일한 취미가 됐다. 이 씨는 “한때 어려운 일이 있어 힘도 들었는데 농악대에 와서 한참 놀다 가면 속도 풀어지고 마음이 편해진다”며 “그 계기로 계속 오게 되더라”고 말했다.
풍물을 시작한 후부터 늘 즐거움을 얻었지만 한 때는 힘든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였다. 감염의 위험으로 사람이 모일 수 없게 되자 농악대 활동도 쉽지 않았다. 당시 회장직을 맡고 있어 더더욱 부담이 컸다고.
“농악대는 끌고 나가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사람이 모일 수가 없으니 어렵더라고요. 사람들보고 오라고 해도 올 수는 없었으니까요. 가끔 농악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잘 있느냐 묻는 것뿐이었죠. 그때 상쇠 조미옥 선생님하고 ‘어려워도 쭉 가보자, 그러면 뭐가 있을테지’ 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렇게 버틴 덕분에 코로나19가 점점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다시금 농악대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진 팀도, 이긴 팀도 모두 흥나게!”
줄다리기가 있는 곳에는 늘 풍물이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경쟁하지 않는다. 수상과 수하로 나눠, 수상이 이기면 나라가 태평해지고 수하가 이기면 그해 풍년 농사가 든다는 속설을 가지고 있다. 모두의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풍물이다. 수상이 이기든, 수하가 이기든 가릴 것 없이 풍물이 울린다. 이 씨는 “줄다리기 이긴 팀, 진 팀 상관없이 징을 막 치다 보면 사람들도 신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며 “농악대 흥을 보고 사람들이 만세 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볼 때면 참 신난다”고 말했다.
또한 풍물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는 “축제장에서 사람들이 다 흩어져 있다가도 한바탕 풍물을 시작하면 서서히 모인다”며 “그때 줄다리기가 시작할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농악 소리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들썩 하잖아요. 외국 사람들도 다 들썩들썩 하던데요. 농악대가 줄에 붙어 다니면서 풍물을 울리면 사람들은 줄을 다리고, 신이 나는거죠.”
“용왕제도 시장굿도 풍물과 함께”
줄다리기를 하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기지시줄다리기가 시작하는 그때부터 풍물 소리가 퍼진다. 용왕제를 끝내고 시장굿으로 자리를 옮길 때도 농악대가 선두로 나서 사람들을 인도한다. 이 씨는 “시장에서 한바탕 하면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나와서 사람들이 구경한다”고 말했다.
또 기지시줄다리기가 다른 나라에서 시연을 할 때도 농악대가 따라간다. 그는 “농악대가 없는 나라에서 흥을 보이면, 다들 아주 좋아하면서 우리를 졸졸 따라 다니고, 줄을 다린다”며 “농악하고 줄하고 궁합이 딱 맞는다”고 말했다.
“명맥 끊어지는 것 상상할 수 없어”
오랫동안 농악대에 있으면서 풍물을 배우러 왔다가 떠난 이들도 많았다. 특히 한 마을에서 단체로 왔다가, 한두명이 빠지면서 다 함께 그만두는 일들이 많았다고. 그럴 때면 아쉬움이 늘 남기 마련이다. 또 처음에 풍물을 배우기 시작하다 어려움으로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늘 고비가 있고 고비를 넘길 때마다 어려움은 있다”며 “하지만 선생님(상쇠 조미옥)이 알려준 대로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 할 수 있는 것이 풍물”이라고 말했다.
“농악대가 소리 울리는 것을 볼 때만 해도 참 좋고, 쉬워 보여요. 하지만 막상 내가 하려고 딱 악기 잡아 들면 안 되거든요. 하지만 며칠만 하면 돼요. 그럼 안 되는 것도 다 돼요. 그걸 못 이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쉽죠.”
대가 끊기는 순간, 그것만큼은 오지 않는 것이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는 “대가 끊기면 참 볼 면목이 없을 것”이라며 “보존회와 농악대 서로가 잘해야 줄다리기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풍물 한 번 울리면 동네가 다 울려요. 사람들도 나와 어깨도 들썩거리고 춤출 때, 그 모습을 볼 때 아주 보람을 느끼죠. 이제 제게 풍물은 친구에요. 앞으로 같이 갈 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