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트 가수 ‘영탁’의 팬심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찬 모녀(母女)가 있다. 영탁을 응원하는 파란색으로 된 머리띠, 원피스, 스카프, 신발까지 모두 똑같다. 이미 영탁 팬 사이에서는 ‘당진모녀’로 유명한 신정은·한선예 씨는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팬심부터 취미까지 똑 닮았다. 20여 년째 같이 전국 팔도로 여행을 다니고,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먼 거리의 전시회까지 한걸음에 달려간다. 이제는 ‘찐친’이 된 두 모녀가 이번에는 자신만의 전시회와 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모녀의 ‘영탁 사랑’
신정은·한선예 모녀(母女)는 트로트 가수 영탁의 열혈 팬이다. 영탁이 뜬다는 소식이 들리면 전국 어디라도 불사하고 달려간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전국노래자랑, 완도에서 열리는 전복 축제, 안동의 영탁 하우스, 창원의 콘서트까지 먼 거리도 이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수 영탁을 먼저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딸 한선예 씨였다. 본격적으로 팬심이 가동된 건 TV조선에서 방영한 <미스터 트롯>이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영탁과의 연이 있었다.
우연히 KBS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입에 개구기를 착용한 실험맨을 봤다. 그때도 같이 TV를 보던 모녀(母女)는 처음에 실험맨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다가, 연예인이라는 꿈을 간절하게 바라는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어 2011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49일>을 보던 딸 한 씨는 주제곡이었던 <가슴이 하나라서>를 듣고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노래를 부른 가수를 찾고 싶었지만 무명 가수라서 쉽게 찾아내지 못한 채 아쉬움으로만 남겼다고.
이후 트로트 가수로 성공한 영탁이 자신이 스펀지의 실험맨이자 <가슴이 하나라서>를 부른 가수라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영탁에게 점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한 씨는 “미스터트롯에서 영탁이 곧 자기가 노래 부를 순서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후배가 실수하는 모습을 감싸주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며 “그 모습을 보고 ‘평생 응원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엄마까지 동참한 영탁 팬심
어머니 신 씨는 처음부터 영탁 사랑이 아니었다. 미스터트롯에서 서로 경쟁하던 가수 임영웅을 응원했다고. 하지만 딸이 영탁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탁에게 말 그대로 ‘스며’들었다.
한편 신 씨를 일으킨 재밌는 일화가 있다. 미스터트롯이 방영할 당시 어머니 신 씨는 몸이 아파 거의 누워만 있어야 할 정도의 신세였다. 희귀병에 속하는 류마티스로 인해 움직임이 어려웠던 때, 미스터트롯이 한 줄기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결과 발표를 앞두고 일주일 늦게 발표한다는 소리가 신 씨를 일으켰다.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 아파서 누워만 있었는데, 일주일 늦게 발표한다는 소리에 일어났어요. 죽이라도 먹고 미스터트롯이 어떻게 결과를 발표 하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봐야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힘이 났던 것 같아요.”

“영탁이 만날 수 있었을텐데”
힘을 낸 덕분인지, 어머니 신 씨는 건강을 되찾았다고. 동시에 영탁 사랑을 담은 그림을 계속해 그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TV조선의 <사랑의 콜센타>에서 신 씨의 팬심을 담은 그림을 보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당시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출연진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면 출연진이 직접 선택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신 씨는 정성껏 영탁의 사진을 오리고, 또 주변에 그림을 그렸고 이를 방송국에 보냈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화가 찾아왔다. 영탁이 직접 신 씨의 그림을 보고 선택했다는 것이다. 신 씨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가 알고 나니 심장이 너무 쿵쾅거렸다”며 “도저히 심장이 멈추지 않아서 청심환을 먹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렇게 영탁과 만날 기회를 코앞에 뒀으나, 방송국을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해당 코너가 취소됐다고. 그는 “그 소리를 듣고 방바닥을 치면서 이틀을 울었다”고 말했다. 딸 한 씨 역시 “엄마가 그렇게 우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딸의 응원 덕에 열 수 있던 전시
아쉬운 결말이었지만, 신 씨는 그림을 계속해 그려 나갔다. 신 씨가 그림을 그리고, 이번에 칠순을 맞아 전시회를 연 것은 딸 한선예 씨의 응원이 가장 컸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어머니 신 씨였지만, 어려운 형편에 크레파스 하나 사기 어려웠다. 남들이 떨어트리거나 거의 다 쓴 몽땅 크레파스를 주워 공책 뒷 면,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단다. 신 씨는 딸에게 “교실 뒤에 그림 걸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스치듯 한 이야기가 딸의 가슴에 콕 박혔다. 그때부터 딸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바로 칠순 맞이 신정은 작가의 전시회 개최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환갑 무렵부터 실행됐다. 딸은 엄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줬고, 전시회를 함께 가기 시작했다.
작품을 본 뒤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 보고 싶은 작품을 따라 전시회를 찾아 가고, 그렇게 영감을 얻으면 신 씨는 자신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학창시절의 자신, 아들과 딸을 가졌을 때의 모습 등 잊지 못할 순간들을 자신 나름대로 표현했다.
그리고 여러 인연이 닿으며 칠순을 맞은 올해 8월 한 달 동안 당진시립도서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된다.
“전시 첫날에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줬어요. 방명록도 써주고 갔는데 집에서 읽어보면서 펑펑 울었죠. 너무 행복했어요. 좋았고요.”
모녀의 여행기, 이제 책으로
딸 한선예 씨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있다. 20여 년 함께 한 모녀(母女)의 여행기를 책 한 권에 담는 것이다. 마침 당진시립도서관에서 1인 1책 에세이 쓰기 프로그램을 본 한 씨는 바로 신청했고, 현재 책을 만드는 과정 중에 있다. 책은 오는 12월에 발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는 모녀(母女)의 여행 이야기가 담긴다. 20여 년 전 처음 기차를 타고 광양으로 여행갔던 것에서 전국 팔도를 여행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다. 한 씨는 “처음에 엄마와 여행갔을 때는 이렇게 길게 같이 여행할 줄은 몰랐다”며 “늘 마지막 여행이 쌓이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가 여행을 즐겨서 재밌게 다닐 수 있었다”며 “이제 엄마가 마치 친구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신 씨는 “딸에게 이제 여행 그만하고 너 결혼이나 하라고 하지만, 또 딸이 놀러 가자고 하면 신나서 노래도 나오고 춤도 춘다”며 “여행 다니고, 영탁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그림으로 나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딸래미 수고많았다. 잘살았다. 네가 잘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와서 축하를 해주는 것 같아.”(어머니 신정은 씨)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하고 싶은 그림 그리고 같이 여행도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요. 전시회도 더 열어드리고 싶고, 유럽 여행 가는 것도 꿈입니다.”(딸 한선예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