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오선근 새마을지도자, 이금자 용연1통 통장, 김한옥 수해 이주민 어르신, 김영숙 전 노인회 총무
왼쪽부터 오선근 새마을지도자, 이금자 용연1통 통장, 김한옥 수해 이주민 어르신, 김영숙 전 노인회 총무

<편집자주>

당진시대는 ‘사랑을 나눠주세요’ 캠페인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이웃들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작은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희망이 될 수 있다.

“밤만 되면 잠이 안 와요. 자꾸 그날 생각이 나요.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어요.”

용연1통 평화로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한옥(75) 어르신은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 이후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물은 집과 살림을 모두 앗아갔고,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어르신의 일상은 여전히 멈춰 있다.

김 어르신은 지난해 7월 기록적인 폭우 당시 집 안에 홀로 있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대문을 넘어 집 안까지 밀려들었고, 수압 때문에 현관문조차 열리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떠올린 김 어르신은 “물이 너무 빨리 차올라 나가려고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며 “정신없이 있다가 마을 주민 도움으로 겨우 창문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물은 집 안 창문 높이 가까이 차올랐고 조금만 구조가 늦었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순간에 사라진 평생의 터전

긴급한 순간, 마을 주민인 오선근 새마을지도자가 허리까지 물이 가득한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김한옥 어르신을 사랑방 창틀로 겨우 업어서 구조해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침수 이후 집 안에는 흙더미가 가득 쌓였고 냉장고, 가구, 생활용품 등 모든 살림살이는 쓸 수 없게 됐다. 오래된 주택 구조상 복구도 불가능해 결국 집은 철거됐다.

김 어르신은 “밖으로 나와 다시 집을 봤는데 흙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주저앉았다”며 “평생 모아 놓은 살림이 한순간에 사라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 어르신은 마을회관에서 두 달 넘게 생활했고 현재는 당진시 지원으로 대덕리 LH 임대주택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오선근 새마을 지도자가 수해를 입어 집터만 남은 자리를 설명하는 모습
오선근 새마을 지도자가 수해를 입어 집터만 남은 자리를 설명하는 모습

다가오는 10월, 다시 갈 곳이 없다

문제는 현재 거주 중인 임시주택 계약이 오는 10월 종료된다는 점이다.

당초 6개월이었던 거주기간은 한 차례 연장됐지만 이후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새 집을 지어야 하지만 경제적 상황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김 어르신은 “계속 날짜는 다가오는데 집은 시작도 못했다”며 “돈이 있으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혼자서는 방법이 없다. 솔직히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김 어르신은 남편과 사별한 뒤 오랜 시간 홀로 생활해왔고 현재 생계 역시 정부에서 나오는 노인 연금에 의존하고 있다. 마을에서 살 땐 이웃에서 부탁한 소 일거리도 하며 지냈지만 수해를 겪은 뒤 더 건강이 좋지 않아 예전처럼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다.

고향을 떠난 외로움, 깊어지는 우울감

김 어르신에게 가장 힘든 것은 집을 잃은 것보다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는 점이다. 수십 년을 살아온 마을을 떠나 낯선 임대주택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이 깊어지고 있다.

김 어르신은 “여기가 내 고향인데 아는 사람 없는 아파트에 혼자 있으니 너무 힘들다”며 “여기서는 이웃끼리 서로 챙겨주고 말도 나누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비만 오면 그때 생각이 나서 잠이 안 온다”며 “가끔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주민들은 실제 수해 이후 김 어르신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됐다고 전했다.

“7월이 다가오면 그날이 다시 떠오릅니다”

피해 주민들에게 수해는 끝난 일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 이후 상당수 주민들이 여전히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수해가 발생했던 7월이 가까워지면서 당시 기억이 되살아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한옥 어르신 역시 “비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며 “그날처럼 또 물이 차오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함께 피해를 겪은 오선근 새마을지도자는 “마을 전체가 전쟁터 같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집은 고칠 수 있어도 사람들 마음속 상처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며 “눈에 보이는 피해 복구는 끝났을지 몰라도 주민들의 삶은 아직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은 행정 지원만으로 해결이 어렵다면 지역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금자 용연1통 통장은 “큰 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집 하나만 있어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 수 있다”며 “평생 살아온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집중호우는 지나갔지만 김한옥 어르신에게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잃고 여전히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어르신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