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사건은 그 하수인(아니 단독범)의 처참한 죽음으로 이제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채 영구미제사건으로 역사속에 묻혀지고 말았다.
안두희의 죽음을 전해 듣고 사건이후 안두희가 세인의 눈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다가 무명의 박기서씨의 정의봉(正義棒)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보도를 보는 국민적 시각과 반응은 사필귀정으로 여기면서 오히려 용기있는 박씨의 행동에 동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음은 어찌된 일일까. 그리고 안두희의 빈소와 화장절차, 그리고 장례절차까지도 국민의 눈을 따돌리고 있음은 또 무슨 연유일까.
필자는 군생활 당시 양구의 병참보급서에서 발행되는 장병에게 급식되는 부식의 송장에 안두희가 적혀있을 때도 그가 역사의 인물(?)이 아닌 동명이인 정도로밖에 생각치 않았던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밝혀질 때 그가 강원도에서 몇째 안가는 납세자의 한사람이었다는 것은 막후의 비호세력이 있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그가 과연 단독범행이었는데도 그당시 특무대장이 사용하던 숙직실을 개조하여 호텔 같이 꾸며 특별감방으로 만들어 제공했으며 특별식사에 자유행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어떤 이유가 있었는가. 그런데도 배후가 없었다면 믿는 국민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는 1년뒤 곧바로 풀려나 강원도 일대에서 부를 축적하며 군납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특례를 누렸는데 과연 우연일까.
이 같은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은 여운을 금할 수가 없다.
그(안두희)가 행한 범행이 과연 자기자의에 의해 행한 범행이었겠는가. 당시 군인의 몸으로 명령에 살고 죽는 현역군인으로 암살사건의 결행은 그 누군가의 명령이나 사주에 의해 재수없이 착출된 사나이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동정아닌 동정도 보내보지만 죽는 그 시각까지 그 배후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고 그가 입을 다문 채 단순 단독범행임을 가슴에 담고 간 그 자체는 어떻게 보아주어야 하는가.
그는 우리역사에 영구미제도 가능하다는 교훈(있어서는 안될 교훈)을 남기고 떠난 두번의 죄를 범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도 국익에 도움이 돼서일까 아니면 죽는 그 시각까지도 그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일까. 공작정치와 음모는 설자리가 없어야 한다. 그의 죽음으로 풀리지 않은 역사는 이제 한낱 불신과 추측으로밖에 남지 않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