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 살어리랏다. 송산에 살어리랏다.

같은 당진군이지만 신평땅에서 송산으로 삶의 여장을 옮겨 푼 지 반년이 넘었다.

여기 와 보니 천혜의 수자원 보고인 해변이 여지없이 사라지고 거기엔 괴물처럼 길게 누워 쇠오줌을 싸대는 한보가 벌써 몇 년째 빈사상태로 코를 드르렁거리고 있었고 리아스식 멋있던 해안선을 일자로 긋고 나간 석문 방조제-송산면에 다리 뻗은 뚝인데 이름이 어째 석문인지?-그 길을 한참 건너 고대면 성산리 사는 둘째 딸네를 가며 길긴 꽤 기네, 놀라고 탄식하며 두 괴물 모두 깨끗이 걷어내고 다시 바지락 줍고 굴따내며 물반 고기반의 옛 영화를 복원하고 싶어진다.

한때 사탕에 아편 발라 당진경제를 황홀하게 했던 한보의 부활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나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겐 뺨맞을 소리...

이사한 지 두달쯤 됐을까. 나는 이름도 생소한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폭격을 머리에 맞았다.

아주아주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머리를 쪼개는 통증으로 모든 사색의 문을 닫게 되었는데 견딜 수 없어 드디어 순천향병원에 입원하여 사각의 병실에 갇힌 채 그 바이러스와 일전을 벌여야 했다.

활기차야할 삶의 현장은 브레이크가 걸리고 스케줄은 엉망이 되었으며 똑같은 내용의 병증세를 잦은 문병객에게 한주간동안 반복설명하는 녹음기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름모를 불청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생이여!

교회 연례행사 가운데 하나인 부흥회가 연초에 우리교회에서도 있었다. 비만 때문에 다이어트를 걱정할만한 젊은이가 별로 없는 전형적인 농촌교회인 우리교회 성도들의 평균연령은 노령화 사회 맨복판에 일찌기 착륙한 형편이다.

그래서 부임하여 맨 먼저 한 일은 동곡리, 서정리 경로당에 인사가는 일이었다. 두곳의 회원은 모두 백명쯤 되었는데 우리교회 성도들도 반 이상이 이곳 회원들이어서 교회의 반을 거기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참으로 감명깊은 일은 교회 부흥회에 동네이장부터 회장,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경로당 노인들이 신자도 아니면서 동네 기관의 행사에 인사치레로 참석해 준 일이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전통사회의 끈끈한 정을 느꼈다. 자기에게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고 거기따라 조종되는 사회현상들을 슬퍼하며 이익이나 돈으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의연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산이 적은 당진에 송산면은 그런대로 구색을 갖추어 높진 않지만 예쁘장한 산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어 좋다. 당진환경연합에서 봉화산 숲 체험학습장을 조성하여 현판을 설치하고 야생화단을 만들었으며 생태조사를 하여 산이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송산면에서도 이 일을 적극후원하고 추진하여 어린이와 청소년 환경교육의 장으로 가꾸어 나가기로 하였다. 망가지는 자연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은 당연함을 넘어 거룩한 일이다. 나는 일상에 쫓겨 그 산에 아직 올라보지 못했지만 물이 노래하며 흘러내리고 가재들이 돌 틈에서 엉금거리는 옛 산골시내를 그려 보라.

우리 교회가 자리한 곳은 ‘꽃산’ 꼭대기여서 경관이 좋다. 지난 봄, 당진읍에서 송산 넘는 언덕 양켠에 도열해서 빨갛게 웃고 있는 꽃들의 열병을 받으며 나는 마치 사열대 위의 중요한 VIP가 된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얻은 영감을 놓치지 않고 내가 사는 산이름을 꽃산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이 꽃산의 아침은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하루의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 목청을 가다듬는 각종 새들의 발성연습과 우리집 음식물 쓰레기를 충실하게 치워주는 닭, 오리들의 경쟁적인 목청 때문이다. 각급의회에서 정화되지 않은 육두문자를 입에 올리는 우리 군내 선량들의 목소리 때문에 상한 마음을 치료해 주는 약소리들이다.

이 꽃산의 나무들은 지난 봄에 황사바람도 여과해서 맑은 증기를 선물해준 고마운 이웃들이다.

아무쪼록 송산땅이, 아니 당진땅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남아 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송산에 살어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