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은 아직 이곳 당진이 고향이라 친구들도 다양하게 많다. 그 중에 몇 몇 고등학교 친구를 중심해서 고향을 지키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우체국에 근무하는 친구 분의 도움으로 대천해수욕장 근처의 콘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와 1박2일의 짧은 부부동반 가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부부가 9쌍이니 아이들까지 합치면 대 인원의 이동이라 준비와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 내려와 자리잡은지 3년정도 되어가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여행이라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색다른 낭만을 간직할 만큼의 예쁜 하늘과 갈색의 거리 풍경들을 보면서 건강함으로 만끽하는 삶에 감사함을 느껴보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다되어 콘도에 도착하였다. 남편들은 저녁밥 준비는 자신들이 할테니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아내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보라는 배려를 해주었다. 사실 내 남편은 결혼생활 9년째이지만, 부엌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이라 이번 기회에 경험을 해볼 수 있게 되었으니 속으로 잘 되었다고 쾌재를 불렀다. 남편들끼리 친하게 지낸 탓인지 아내들도 금방 친구가 되어 버렸다.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저녁이 다 되었다는 기별이 왔다. 과연 어떤 저녁을 준비했을까? 저녁이 준비된 방문을 여는 순간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일명 대하요리라고 하였다. 가스버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굵은 소금을 차곡차곡 넣은 다음, 그 위에 싱싱한 대하를 올려놓아 구워먹는 요리였다. 회비를 톡톡 털어 많이 사왔으니 실컷 먹으라고 했다. 가스버너 하나에 두 부부씩 어울려서 살이 통통하게 찐 대하를 구워 먹으면서 서로의 진한 우정을 주고받기에 바빴었다. 김치찌개도 일품이었고, 시어머니께서 까준 밤을 넣고 한 밥이 비록 삼층밥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순간의 행복에 취해 모두들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니 밤 10시정도 되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바닷가로 나가자고 했는데, 아이들도 신이 나서 잠잘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채우기 작전에 몰입을 하여 9쌍중 3분의 2정도는 성공을 했다. 모두들 신혼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더 분위기가 무르익으려면 노래방을 거쳐가야 한다고 하였다. 모두 가수 뺨치게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기세에 눌려 바짝 긴장을 하고 부른 노래가 나의 18번인 한혜진씨의 갈색추억이었다. 정말 음악에 취해 멋들어지게 불렀다. 옆에 있던 남편의 입이 짝 벌어질 정도였었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노래방이라서 그런지 가을만큼 풍성하게 간직했던 마음들을 하나둘씩 털어놓으며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었다. 아이들이 걱정이 된다면서 숙소로 돌아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남편과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끝까지 남아 있었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남편은 “다들 들어갔는데, 그만 들어가자. 남사스럽게 얼른”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구세주, 남편 친구 부인인 선웅엄마. 숱한 노래자랑에서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정도의 명가수인 선웅엄마도 같이 남아있겠다고 했었다. 그러니 더 이상 남편은 할말을 못했다. 나와 선웅엄마는 낭만에 취해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밤바다를 보니 가슴만 두근거릴 뿐이었다. 연애할 때 남편이 군인(육군대위)이었기에 바다 구경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했다고 앙탈도 많이 부렸었다. 그래서 늘 아쉬움을 안고 살았기에 슬며시 남편에게로 다가가 “우리 모처럼 연애 기분 한 번 내보자구요. 이렇게 당신과 멋지게 바닷가를 얼마나 거닐고 싶었는데....”하고 통사정을 하니 차마 친구들 앞에서 민망한지 슬그머니 오토바이 대여하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오토바이를 타자고 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처럼 예쁜 아가씨가 되어 남편의 허리를 꽉 잡았다.
노란 오토바이를 탔다. 부릉부릉 하더니 대천해수욕장 끝에서 끝을 누비며 멋지게 달려 보았다. 나만 신나는 줄 알았는데, 남편도 친구들 앞에서 내색을 못했지만, 부부는 일심동체였다. 무슨 영화배우나 되는 착각도 했었고, 연애시절 못내 아쉬워했던 그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순간들이었다. 군데군데 고여 있던 물이 튀겨 옷이 흠뻑 젖기도 했지만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귀에 대고 “정말 오랜만이에요.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연애시절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어요”라고 속삭여 보기도 했었다.
그때 우리 부부 뒤를 바짝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선웅엄마였다. 그런데 선웅엄마가 운전대를 잡고 그 남편은 뒤에서 부인의 허리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구경하는 사람들은 부럽기도 했지만 배꼽 잡으면서 웃기도 했었다. 밤바다를 보러 나왔던 사람들은 장작불을 피워놓고 그동안 찌들었던 마음들을 출렁거리는 파도에 띄워 보내는 연습을 새벽이 오도록 계속하고 있었다. 밤을 지새운 다음날, 다시 짐을 챙겨 근처 바닷가로 장소를 옮겼다. 그 곳에서는 맛조개를 잡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구멍에 소금을 넣으니 맛 조개가 톡하고 고개를 내밀어 튀어 올라왔다. 그런데 나온 순간에 꽉 잡아 빼내야 하는데, 기술이 부족하니 그게 잘 안되었다.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체험학습 현장이 되어 한층 재미를 더해주었다. 잡은 조개를 철망 위에 놓고 구워먹어 보기도 했는데 맛 조개의 맛은 사무치게 바다를 좋아하도록 만들 만큼의 특별한 맛이었다. 점심을 끝으로 여행의 막을 내렸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많은 생각들을 해보았다. 참 고마운 친구분들이었다. 남편은 고향에 다시 내려와 자리 잡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어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내었노라고 말을 해주었다. 이제 당진은 내 고향이기도 하다. 다시금 새롭게 정을 붙이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그런 깊은 마음을 심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작은 모임의 출발이지만, 지속적으로 모임을 추진하여 고향발전을 위해 한 몫을 할수 있는 그 날을 준비하기 위해 각자의 삶에 충실할 것이라고 다짐들을 하고 있다. 이처럼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에 견줄만큼의 기치를 발하는 모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