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십자가처럼 갇히고 가난한 자들에게 빛이 되어

「낮은 곳에 임하소서」 -성경, 롬12:15-16

정만옥 씨를 만나고 난 후 무엇에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이나 멍한 기분에 휩싸여야 했다. 그의 맑은 눈동자며, 얼핏 그의 손을 스쳤을 때 미세하게 번지던 온기며, 소년 같은 웃음소리들이 보이지 않는 강물이 되어 내면의 밑바닥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그의 얘기를 듣던 중 풍금소리처럼 가슴의 한 곳을 울리던 그 뭉클함이 낮은 파동으로 온몸에 퍼져나갔던 것을 그는 눈치챘을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어느새 가슴에 강물을 흐르게 만드는 사람, 무엇인가 먹먹한 것을 오래도록 남겨두는 사람……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천국은 따로 만들어진 별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지금 현재에서도 천국을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삶은 천국으로 가는 연장선인 것이죠. 저에겐 그런 신념이 있습니다. 천국을 이 땅에서도 이뤄나가겠다는.”

그가 갖고 있는 것은 커다란 재산이나 깊이 있는 학식이 아니다. 그의 유일한 재산은 육체뿐이다. 그의 육체는 낮은 곳에서 낮은 자들과 함께 있을 때 어둠 속의 십자가처럼 빛을 낸다.

쓰레기 줍기, 담배꽁초 줍기, 넘어져 있는 물건 바로 세우기, 뭐 실천하지 않을 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차를 몰고 가다가 머리가 깨지고 배가 터진 짐승의 사체가 보이면 도로 옆으로 치워놓는 일, 특별한 봉사가 아닐 수도 있다.

기독교의 고난주간에 꼬박꼬박 헌혈을 하는 일, 헌혈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지금까지 7년 동안 아침을 굶으며 끼니당 3천원으로 계산해 한달이면 9만원을 모아 재소자를 돕는 일,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뇌졸중, 거동불능자, 중증장애인, 극노인 등을 찾아가 몸을 씻겨드리는 일, 뭐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1년 6개월만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이제 대학생 새내기가 된 일, 종종 듣는 뉴스 아니던가.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한 사람이 꾸준히 해왔다면 뭐, 대수롭지 않아, 하고 여겼던 당신의 마음에도 푸른 여명이 들 것이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얘기를 듣던 그때의 내 가슴이 그랬던 것처럼.

한 남자와 그의 이야기

기독교 대한감리회 당진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날 한 남자가 화장지를 등에 메고 와서 험한 인상을 쓰며 “나 청송감호소에서 출감한 지 얼마 안 되는데 화장지를 팔아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누구나 그렇듯 모두 피하고 외면했지만 그는 남자를 조용한 옆방으로 불러서 따끔하게 혼을 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출감자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그래 감호소에서 출감한 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우냐고, 재소자를 위해 봉사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어떻게 사회에 협조를 부탁할 수 있겠느냐고. 그때 그의 말을 들은 남자는 큰 어깨를 내려뜨리고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섰다.

남자를 불러 세운 그는 남자의 어깨를 짐스럽게 했던 휴지를 산 후 등을 두드려주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2년 후 그때의 서럽고 험악했던 남자는 전혀 다른 말끔한 모습으로 그를 찾아와 2년 전 그날 이후로 새생활을 시작해 잘 살고 있다며 그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재소자들의 산타클로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매일 아침을 금식하며 모은 돈으로 면회는커녕 영치금도 못 받아보는 홍성교도소의 재소자 10명을 추천받아 약간의 영치금을 넣어주고 있다. 추석과 설 명절엔 떡국을 전 재소자와 경비교도중대원들, 그리고 교도관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번씩 재소자를 위한 합동 생일파티를 연다. 부활절과 성탄절에도 과자류와 계란을 제공하고 있다.

10년이 넘은 프라이드를 여지껏 타고 다니는 그가, 그의 이름으로 된 변변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한 그가, 따로 마련할 돈이 없어 아침을 굶는 그가 행한 봉사는 재소자들 사이에서 퍼진 산타클로스라는 별명으로 되돌아왔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예수)에게 한 것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 갇힌 자, 굶주린 자,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고도 말씀하셨죠. 재소자들을 도우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느끼게 됐습니다. 갇히고 억압된 생활 속에서 무엇이든 귀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재소자들을 보면 다시금 봉사하게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거든요.”

지난 6월7일 그는 홍성교도소의 재소자들을 위한 교양강좌 강사로 초청받아 ‘꿈과 희망을 가지라’는 제목으로 강단에 섰다. 그 후 지난 7월18일에는 재소자들을 돌보는 경비교도중대 대원들을 위한 2차 강의를 초청 받았고, 지난 9월13일엔 재소자를 위해 세 번째 강단에 서야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7년 전 그가 처음으로 홍성교도소와 인연을 맺으면서 복음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50여명의 재소자가 그의 설교를 들었으나 지난해에는 15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200여명으로 증가했다.

그의 삶에 묻어있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재소자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파문은 재소자들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신감과 희망으로 되살아나 그들을 낮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지만 그에게도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왔다. 그는 막내딸을 가슴에 묻었다. 그의 막내딸이 수능을 치른 다음 졸업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18살의 딸을 가슴에 무덤으로 간직했지만 그는 실의와 절망을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겨냈다.

18년 동안 딸과 인간의 정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게 해주신 감사함,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의무와 짐을 벗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 딸을 어지러운 세상에 때 묻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이 그것이다.

그는 먼 훗날 천국에서 딸과 만날 것을 기약하며 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하객들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상을 당해 당황하는 가족들을 위해 시신을 염습한 것이 200여 회나 된다.

그의 목욕봉사를 받은 분들 중에도 이미 20여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가장 험한 곳을 헤쳐온 그의 손은 누가 뭐라 해도 가장 고결한 손이다.

그의 손을 거쳐간 수많은 이들은 천당에서 그의 앞날을 밝혀줄지도 모른다. 밝은 곳이 아닌 더욱더 어두운 곳으로, 높은 곳이 아닌 낮고 또 낮은 곳으로, 아직 참혹함과 어둠 속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계속 등불이 될 수 있도록……희망과 빛으로 그들의 영혼을 인도할 수 있도록…….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