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君)은 충남 당진 출생으로 금년 21세의 전도가 양양한 천재 청년이다. 가세가 넉넉치 못하여 양주보통학교만 졸업하고 경성 정자옥 점원으로 들어가서 여가를 보아 선배인 김복진 씨 지도를 받아서 틈틈이 배운 것으로 금번 입선된 조각은 작년 여름에 만든 작품이 뜻밖에 그와 같은 입선된 것이라 한다.’(전도 양양한 천재의 청년, 매일신보 1936.5.13)

매일신보에 보도된 조각가 청년 이국전(李國銓)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그 신문은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하던 조선미전의 첫 입선한 작가들을 매년 소개해 왔는데 그때 눈길을 그는 것은 조소분야에 김복진 제자가 3명이 나란히 입선했다는 것이다. 이때 이국전의 직업은 음식점인 정자옥의 점원이었다(이이의 생몰 년대 또한 뚜렷하게 들어 나지 않고 있다). 조선에서는 유일했던 조각가 김복진(金復鎭,1901~40).

우리나라 근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근대미술가 11인으로 꼽혀 조명이 되는 작가다.(여기서는 그의 이력을 짧게 언급만 한다. 충북 청원 태생으로 19년 배재고보를 졸업한 뒤 20년에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극단 토월회, 미술가 단체 토월회, 미술교육기관 정측강습원, 문예조직 파스쿨라를 결성했다. 귀국한 뒤 1925년 8월 카프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10월에는 YMCA에 미술연구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28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 투옥당하여 만5년의 감옥생활을 했다.

대표작이 좥백화」(1938), 좥소년」(1940), 김제 금산사의 좥미륵전 본존불」(1936), 속리산 법주사의 좥미륵대불」 등인데 다 유실되어 버렸다. 그는 특히 30년대 중반기부터 나라안에 불어닥친 동상 건립 붐에 가장 많은 수의 동상을 제작한 것으로도 그의 명성이나 예술성을 감지할 수가 있겠다.

1935년 2월에 김복진은 사직공원 옆에 미술연구소를 차려 제자로 이국전, 홍순경, 박승구, 윤효중, 이성이를 받아들이고 밀러의 동액(銅額)을 만들고, 공주 영명학교 윌리암 교장 동상, 송병우 동상, 손봉상 동상, 조선일보사 방응모, 정봉현, 김윤복 등의 흉.동상을 제작하였다. 이때에 이국전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조사전람회에 작품 좥습작」으로 입선을 한다. 40년 8월 18일 김복진이 죽고 그해에 그의 유작전이 열린다.

동아일보 38년 6월8일자나 조선일보 6월8일치를 보면 ‘합덕 교육계 은인 박씨 동상건립 제막식’을 알리는 기사가 나온다. 신촌수상소학교의 설립자는 박병렬(朴炳烈)씨였다. 당시 6월4일에 식을 가졌는데 이 동상의 제작자가 다름 아닌 정관 김복진이었다(그 학교는 현재 신촌초등학교. 설립자인 박씨에 대한 연구도 상당한 연구꺼리일 듯 싶다. 당진문화원에서 2000년 12월에 펴낸 「당진의 금석문」 91쪽의 사진설명은 잘못돼 있다. 일제의 강제철거가 아닌 공출에 의해서다).

41년 11월에 이국전은 정자옥 화랑에서 첫 조소 개인전을 연 다음, 42년 스승이 운영하던 사직정 경성미술연구소을 맡아하며 제21회 조선미전에 낸 작품 좥수(首)」가 특선을 하고 수업 받던 제자 염태진이 입선을 하게 된다. 이해 봄 무렵 이국전은 경성미술연구소를 창성동 자택으로 옮겨서 운영을 한다.

조각가 이국전의 조선미전에서의 작품활동은 이러하다. 제15회(1936)-소림씨상, 노부/제16회-A씨 수상, P여사지상/제19회(40)-흉상 제22회(43)-소년(특선)/제23회(44년)-어느 음악가의 얼굴. 해방이 된 이후에는 제1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년 10월1일~)에 심사위원으로 김경승(金景承), 윤승욱(尹承旭)과 함께 참여하고 작품 좥흉상」을 출품한다. 여기까지가 그의 활동영역이다.

최열이 쓴 좥한국근대미술의 역사」에는 연대별로 소상한 활동이 나타나 있거니와 그 책에는 우리 사회의 격동기 무렵의 혼돈을 밑자락에 숨기고선 이렇게 써져 있다.

“이국전은 김복진의 제자로 일본대학 예술부에 유학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40년 김복진이 세상을 떠나자 미술연구소를 물려받아 운영했다. 49년 제1회 국전 조각부 심사위원을 했으나 월북했다.”

조각가 이국전은 그후 ‘조선미술’(1957년 5월호-청년사에서 나온 좥김복진전집」에도 실려 있다)에 조각가이자 스승이던 정관 김복진 선생을 회고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쭔손진동 이메일-dong5797@hanmail.net

※다음회 - 아! 이종린과 소설가 오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