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도 요만씩밖에 않고 벼도 거름이 없어 노랗고, 살찐 사람들을 못봤어. 그런데서 이적껏 살었으니...”

할머니의 눈에는 밀려오는 서러움으로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제7차 이산가족 상봉, 53년만에 오빠를 만나고 온 전종임(67) 할머니는 아직도 그 꿈같은 현실이 눈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피 묻은 얼굴이 보인다며 오빠가 죽었다는 무당의 말에 굿도 해주고 제사도 지냈던 전종임 할머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빠(전종철. 71)를 만난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설움과 눈물, 형제들이 흘린 피로 감내해야 했던 전쟁, 그 후에 찾아 온 생이별.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지만 상처는 아직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욱신거린다.

인천에 살던 전종임씨는 전쟁이 터지면서 가족들과 함께 송악면 고대리로 피란을 왔다. 하지만 난리통에 어디에도 맘 편하게 살 곳은 없었다. 전쟁은 할머니 가족들에게 끔찍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오빠 전종철씨가 18살의 어린 나이로 의용군에 끌려갔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쓰러졌다. 약 한번 써보지도 못한 것은 그 시절, 당연한 일이었다. 끝내 어머니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후 전종임씨는 아버지의 친구 집으로 보내졌고, 전종임씨의 아버지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떠났다.

전종임씨는 17살 되던 해 결혼을 했다.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유봉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고 슬하에 2남 6녀를 두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몸은 비록 고되었지만 속 한번 안 썩이고 자라준 자식들을 보며 지금껏 살아왔다.

얼마 전, 전종임씨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빠 전종철씨가 적십자사를 통해 연락을 해온 것이다. 적십자사에서는 신청자가 많고 전종임씨가 다른 이산가족에 비해 나이가 적어서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동안 전종임 할머니의 고생스러웠던 인생을 보상해 주기라도 하듯 행운은 그렇게 할머니의 곁에 와 있었다. 오빠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온 것이다.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오빠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직접 만날 수있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져 병원까지 가게 된 전종임씨. 평소 당뇨와 고혈압에 천식까지 앓고 있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걱정도 컸지만 다행히 기운을 회복하고 무사히 오빠를 만나러 북한땅을 밟을 수 있었다.

헤어진 지 15년만에 만난 동생들(전종희, 전종례)과 함께 떨리는 가슴을 안고 북한땅에 발을 디딘 전종임씨, 오빠는 거짓말처럼 살아서, 환영을 보는 듯, 그러나 정말로 살아서, 할머니의 눈앞에 서 있었다. 세상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할머니를 휩싸고 돌았다.

그러나 53년만에 상봉하는 오빠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상봉 첫 날 2시간, 둘째 날 2시간 그리고 마지막 날 1시간. 하고싶은 말은 남매를 갈라 논 휴전선 길이의 몇곱절이 넘건만 막상 마주한 오빠의 얼굴을 보고는 터져나오는 슬픔에 눈물만 흘렸다.

평양에 살고 있는 오빠 전종철씨는 그동안 제약회사 사장으로 있다가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 도중 북한측 사람들이 오면 마음놓고 말을 못하는 것 같아서 전종임씨는 가슴이 아팠다. 전종임씨도 그쪽 사람들이 다가오면 가슴이 철렁해서 울음마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 곳에선 두 시간 교육을 받고 갔지만 그 쪽에선 두 달동안 합숙교육을 받고 난 후 그 자리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살아서 천국을 구경한 것인지 지옥을 구경한 것인지 모르겠어.”

전종임씨는 그런 곳으로 오빠를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금 울컥 하고 올라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돌아온 전종임씨는 오빠의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려 며칠동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화면으로나마 얼굴을 대했던 가족들의 심정 또한 그러했다.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재회를 평생동안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전종임씨는 그곳에 다녀온 뒤 소원이 하나 생겼다. 아산가족 면회소가 하루빨리 설치 돼 오빠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으로, 피와 눈물로 얼룩진 뼈아픈 역사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전종임씨 가족에게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전종임 할머니가 오빠를 만나고 온 뒤 자손들은 할머니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씻어드리기 위해 할머니의 본래 이름을 되찾아 주고 싶다고 했다. 아들 박승규씨는 어머니의 원래 이름을 찾아달라는 아버지의 유언도 있었고, 할머니의 이름 두 개가 상봉하는 그 날에도 푯말에 나란히 있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박승규씨는 건강이 안좋은 어머니에게 적십자사에서 자상하게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같은 아픔을 안고 사는 분들도 희망을 잃지 말고 적십자사에 연락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전종임 할머니는 간간히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 할머니가 마음놓고 오빠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그 날, 천만 이산가족의 응어리진 가슴은 봄눈 녹듯 풀어질 것이다.

이필용 기자 pylee@dj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