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는 이성적으로 다루어질 가치를 지니며 정신 고양(高揚)의 가치는 표현의 자유를 갖는 독립성을 지닌 신체적 구조로 형성되어있다.
어떤 내용에 문맥을 폄(貶)하여 자기사고와 반한다고 매도해버리는 성숙하지 못한 자가 주변에서 백주에 버젓이 활개치며 성인스런 몸짓으로 유령처럼 행세하는 꼴이 가소롭기 그지없고 수심 같은 동장에 자괴(自愧)함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문장의 흐름이 필자의 자유를 가지며 예술을 포함해서 사회의 외설적, 즉 성 표현물 등 모든 것을 금기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학은 현실을 반성하고 현실이 보이는 것 그대로 가감 없이 정체를 뒤집어 보는 표현방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존가치에 충실을 내포할 수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한계를 넘어선 비어(卑語)에 해당되지도 않는 추상적 모습을 그렸다고 토분(土糞) 취급으로 질책하여 호도까지 제시하니 말이요, 이가득문 구불가언야(耳可得聞 口不可言也)라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지 아니할 것을 처세함에 고뇌를 감당키 어려워 서 술로 심안을 가지려하는 것이다.
둔세불견지이불회(遯世不見知而不悔)라 세상으로부터 숨어있어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이젠 모든 것을 잊고 상율천시(上律天時) 위로는 하늘에 법을 따르고 하습수토(下襲水土)라 아래로는 물과 흙의 이치를 따르며 일파청산(一派靑山)과 더불어 순어도 불역어륜(順於道 不逆於倫)이라 도리에 순응하며 천륜에 역행하지 않고 이 사회의 귀한 거름이 되어 존재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봉사하며 이웃과 더불어 정도 위에서 살아갈 것이다.
행기유치(行己有恥) 자기행함이 염치를 알아서 처신함이 편안할 것이거늘, 살아오며 정심으로 택선고집(擇善固執) 선을 가려 굳게 잡을 것이며 전패(顚沛)되지는 않을 것이다.
차원있는 언술로 작품을 구사하여 외인에게 통감을 주지 못하고 남의 글을 비평으로 일관하고 있는 작태를 보면서 경자복지(傾者覆之) 기울어진 것을 쓰러뜨리고 있으니 말이요,
계명구폐(鷄鳴狗吠) 닭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쯤으로 알아 넘기면 될것이거늘 가는 세월도 아쉬운데 이리도 무사한가 자탄하며 질제귀신이무의(質諸鬼神而無疑)라 귀신에게 물어봐서 의심이 없으면 조용히 거실로 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