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 돌보는
우리 며느리
‘보통 아닙니다’
오봉산자락에 걸린 <사람들의 둥지 designtimesp=31092>
고단한 삶에 웃음꽃 뿌리는 며느리 정경옥씨
천면 율사리 남산정류소에서 꺾어올라가다 보면 오봉산 자락에 매달린 몇가구의 집이 있다.
그 가운데 커다란 호두나무와 자두나무가 있는 곳이 최병하(69세)씨의 집이다.
그분은 지난 며칠동안 두번이나 신문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며느리가 너무 장해서 자랑을 하고 싶은데요, 어디다 어떻게 해야 좋은 지 몰라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꼭 제집 자랑 같아서 쑥스럽지만 웬만 하면 제가 이러겠습니까. 어려우셔도 우리 며느리 꼭 좀 신문에 나게 해주세요. 보통 애가 아니거든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게 착하고 헌신적인 며느리라는 시아버지의 칭찬도 칭찬이었지만 며느리를 칭찬해주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올 정도라면 그 시아버지의 사랑 또한 지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듣었다. 사위사랑은 장모사랑이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랑이라고 하는 오래 된 말도 있지만 시아버지를 저토록 감동시키고 있는 며느리는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아버지 최병하씨는 남산 정류소까지 나와 기자일행을 맞았다. 자동차 한대가 간신히 들어가는 좁은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자 풍취가 어느새 산골티를 내었다. 댁에는 최병하씨 부부와 할머니, 그리고 네 살된 막내손녀 현희만 있고 며느리는 밭일 하느라 밖에 나가고 없었다.
연로한 할머니는 방 한가운데 누워 계셨다. 최병하씨의 어머니, 그러니까 며느리에게는 시할머니 되는 분이다. 올해 아흔넷 되셨다는 할머니의 머리맡에는 한줄기 빛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예수의 모습이 담긴 커다란 성화가 있었다. 할머니 방의 창으로도 장마때 답지않은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맑고 온전한 정신으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하루종일 누워 지내신다. 그분을 깨끗이 씻어드리고 먹여드리고 가끔 대소변도 받아드리고 말벗도 해드리는 사람이 손주 며느리다. 며느리가 가장 극진히 모시는 분이 바로 할머니라고 시아버지가 한말씀 거들지 않아도 이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손주 며느리가 나 때문에 고생이유. 빨리 가야 할텐데 가지지는 않고...”
할머니는 아직도 4년전 교통사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아들 최병하씨가 걱정돼 외출할 때마다 차조심을 시킨다.
마침 며느리 정경옥(32세)씨가 들어왔다. 들국화처럼 수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이다. 합덕이 친정인 며느리 정씨는 이집 장남 최순명(37세)씨와 결혼해 귀여운 3공주 수빈(10세), 혜인(9세), 현희를 낭아 기르고 있다. 시아버지 최병하씨는 4년전에 치른 교통사고로 팔과 다리와 목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시어머니 이필순(67세) 여사도 당뇨와 관절염, 골다공증으로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무릎관절이 유난히 불편한 시어머니는 내내 자리에 앉지 못하고 마루와 방을 서성이셨다. 소방공무원인 남편은 24시간 교대로 하루 건너 집으로 돌아온다. 이쯤 되면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그토록 칭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경옥씨는 세명의 아이를 돌보고 세분의 불편한 어른을 모시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맡다시피 하면서도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형제와 친지간에 정이 두터워 아이들 생일만 되어도 어른 아이 다 이집으로 모여든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다.
“그런 일들이 다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우리 며느리가 싹싹하고 잘해서 그렇죠.”
시아버지의 칭찬이 계속되자 며느리는 제발 그만 좀 하시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힘들지 않아요. 남들도 다 이만큼은 하고 사는데요, 뭘. 오히려 할머니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당신 걱정은 안하시고 자식 걱정에 손주들 걱정, 그리고 아직도 저렇게 정신이 건강하신 걸 보면 할머니 영혼이 맑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해 드리고 싶어져요.”
이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네살 된 꼬마 현희는 먹을 것이 생기면 꼭 누워계신 증조할머니에게 먼저 갖다드린 다음 언니들 몫도 챙겨놓고서야 제 먹을 걸 먹는다.
풀도 매고 모종도 해야하는 바쁜 농사일을 방해할까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두랑 복숭아랑 과일이 익는 가을이 되면 한번 꼭 놀러오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오봉산 자락에 걸린 정경옥씨의 집을 내려왔다. 풀냄새, 가축냄새, 사람냄새가 섞여있는 작은 둥지에서 오붓이 사는 가족이었다. 소박한 웃음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며느리 정경옥씨는 시아버지의 자랑거리일 만도 했다. 그 존재 하나로 모든 불편과 우울을 걷어 내는 웃음꽃, 그래서 그 며느리가 소중할 만도 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무엇이 되고파서 종종 불만과 원망과 미움과 짜증에 젖곤 하는 것일까? 그럴 때 우리의 존재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