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된 듯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핫바지 얘기를 입에 올려 충청도민의 정서를 극도로 불편하게 했었다. 이로 인해서 한동안 득을 본 정치인도 많았고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져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핫바지는 원래 앞과 뒤가 분명하지 않아 기능상 편리한 점도 있지만 모양새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별 신경 쓰지 않고 다리를 꿴 후 허리끈 동여매면 그만인 통바지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결같지는 않겠지만 그러면 왜 충청도 사람을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했을까.

사람들이 원만하고 두루뭉술해서 여유있고 인심 좋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려진다면 싫을 것도 없을 것이다. 분명 줏대 없고 지조 없이 이리저리 잘 휩쓸리며 단합도 안되고 주인의식이 없다는 놀림이라고 생각했기에 불쾌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비아냥이 근래에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는 데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직위에 따라 철저한 사명감이 있었다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당진항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 계획 무산에 따른 전후과정을 보면서 더욱 비통한 생각이 든다.

헌재 위헌판결 이후 10월28일, 11월1일, 11월3일 등 사수결의집회에서 나타난 모양새는  과연 우리들에게 주인의식이 있는 것인지 자성하게 한다. 사실 행정수도를 충청도로 옮겨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실리를 떠나서 우리들을 너무 골려먹는다는 생각으로 더욱 속이 뒤집어지게 만든다.

어느 곳에선 고가도로 밑에 화기도구를 설치하여 돈버는 일을 방치하고, 체육시설을 하여 아래윗말 갈라놓은 민심을 달래기까지 하면서 왜 우리 지역에선 비바람 가리기 위해 쌓아놓은 다분히 공익성격이 짙은 적치물을 치우라고 고발까지 당해야만 하는가. 언제까지 정치판에서, 군대에서, 객지에 나가있는 우리 애들의 직장에서 멍청도란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개미나 꿀벌떼처럼 일사불란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민주자본주의사회에서 개개인의 인격과 자유에 따르는 선택과 행위의 자율은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민의 뜻과 의사를 정당하게 표출해야 될 때는 주인된 입장에서 결연한 의지는 있어야 된다고 본다. 그것이 전체와 개개인의 이익이 되고 합리적일때는 더더욱 그럴 수 있다. 무임승차는 항상 떨떠름한 여운이 남는다. 함께 나설때는 나서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찾고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