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은 전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면면히 이어와 국가지정 보물 제409호인 영탑사 금동삼존불과 도지정 유형문화재인 영탑사약사여래상을 비롯해 기념물인 면천 은행나무, 면천읍성은 그 웅장함을 과시하고 문화재 자료로는 면천향교, 영탑사법종, 영탑사 7층 석탑이 있어 문화유산의 가치를 한층 높여 우리 당진군의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아직도 면천면내에는 역사적 고증을 거쳐 보존해야 할 유적이 많이 있다. 그 문화유적은 풍악루(豊樂樓)와 골정지(骨井池)의 건곤일초정(乾坤一艸亭) 두 곳이다.

이 유적은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입증될 만한 사료도 있고 군민의 관심이 높아 하루속히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랜 역사를 장식했던 두 곳의 문화유적을 살펴본다.

-풍악루(豊樂樓)

풍악루는 면천면 성상리 771-2번지 현 면천면사무소 정문 위치에 세워졌던 누각(樓閣)이다. 옛날 면천군청의 문루(門樓)로서 아담하게 단청된 품위 있는 문루였다. 언제 세워졌는지 기록이 없어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51년 당시 군수였던 이관영(李寬永)이 중수하고 풍락루(豊樂樓)라 이름을 지어 현판을 달고 풍악루기를 썼다. 풍악루는 건물이 노후되어 보수하지 못하여 붕괴 될 형편에 이르러 보수할 재력이 없자 당시 면장이었던 김건배(金健培)가 면천면협의회와 이장들의 협의·의결하여 1943년 철거되었다. 현판과 풍악루기(豊樂樓記)는 현재 면천초등학교 향토사료실에 보관되어 있다.

-골정지(骨井池)와 건곤일초정(乾坤一艸亭)

골정지는 면천면 성상리 즉 동문밖 면천향교로 가는 길옆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이곳이 면양읍지에 기록이 남아 있는 골정지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에 관한 기록은 없고 벽골지가 동쪽에 있다 하는데 이 골정지와 연관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규모는 작아 주위 319m, 수심 3.3m이다. 당시 북학을 주창한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아버지의 전기 「과정록(過庭錄)」에는 면천향교와 못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비록 향교 앞에 사방 100보쯤 되는 연못에 황폐해진 땅의 지력을 얻기 위해 아버지는 술과 음식을 마련한 후 백성들을 모집해 연못을 준설하여 도랑물이 그 곳으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그 못에 물이 가득 모여 넘실거렸으며 가뭄에는 농사를 짓고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연못 한 가운데에는 돌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6각의 초정을 세워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는 두보의 시에서 따른 말이라 한다. 현재 일초정은 없어졌지만 그 연못은 면천향교 앞에 남아 있다. 당시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시절에 쓴 「과농소초(課農小抄)」에는 이 연못을 언월지(偃月池)라고도 불렀다.

면천의 역사는 어느 지역보다도 우리 군민의 숨결 배여 있고 맥박이 뛰는 자랑거리다. 이러한 자랑거리인 문화유적은 당진역사의 흔적과 맥을 아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이어온 문화유산은 잘 보존해야 할 가치와 목소리가 높다.

그러므로 현재 관리하고 있는 문화유적도 중요하지만 역사 속에 감추어진 문화유적도 고증을 통해 우리 조상의 얼을 바로 알고 문화유적의 가치를 배워 잘 보존하는 일은 우리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