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숫자 모르는 노인들 ꡐ문맹탈출ꡑ 열기 가득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이 모두 즐거워
손자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숫자를 읽을 수 없어 전화걸기가 쉽지 않다. 또 중요한 것은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필요할 때 열람할 수 있지만 글을 모르는 사람은 뭐든지 기억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ꡐ문맹의 고통ꡑ 그것은 실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고통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리고 전쟁 때문에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글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왔다. 일제 침략기에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글조차 읽지 못하게 하는 민족 말살정책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방 이후 경제가 발전하고 다소나마 생활이 나아졌지만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생업에 뛰어들었던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배움의 길, 문자해득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 시대엔 ꡐ문맹ꡑ이라는 말 보다 ꡐ컴맹ꡑ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문맹의 고통은 아직 농촌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그리고 가까운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일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와 같은 ꡐ문맹의 고통ꡑ은 글을 모르는 노인들에게는 부끄러움이 되기도 하지만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송악면 월곡리 마을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글 수업에서 말이다.
월곡리 노인회장이기도 한 안영환(72)씨는 약 2주 전부터 글과 숫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월곡리 노인들을 위해 ꡐ국어선생님ꡑ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요일을 뺀 나머지 요일에 1시부터 4시30분까지 매일같이 칠판 앞에서 분필을 들고 있다.
ꡒ글과 숫자를 몰라서 자녀들이나 손자들과 전화통화 조차 자주 하지 못하는 마을 분들을 보고 분필을 들었습니다. 가르친다는 생각이 아닌 서로 배워본다는 생각으로요.ꡓ
ꡐ아무것도 모르는 늙은이ꡑ를 주목해서 들어주는 것이 고마워 그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는 안영환씨는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이 ꡐ월곡리 국어선생님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실제 예고 없이 한글 수업이 이뤄지는 노인회관에 들어서는 순간, 의외로 많은 15명의 노인들이 차례상 같은 상을 앞에 두고 바짝 붙어 앉아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학생이 받는 보통의 국어수업이 아닌 탓에 월곡리의 국어시간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 첫째가 바로 ꡐ장날에는 출석률이 저조하다ꡑ이다. 25일 노인회관을 찾은 날도 장날이었는데 이날은 출석률이 적어 15명 정도만 모였다는 것. 대부분이 여학생 할머니로 구성돼 있는 탓에 일부 할머니들이 봇짐장사를 위해 시장에 가서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날엔 결석자가 많지만 월곡리 국어선생님은 이날만큼은 ꡐ여학생들의 결석ꡑ을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ꡐ사회적 상황ꡑ을 고려하지 않을 때 글을 모른다는 것은 때로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여학생이 된 할머니들 역시 그러한 수줍음 때문에 선생님 앞에서는 글을 쓰는 반대편의 손으로 살포시 노트를 가리기도 한다고 안씨는 말했다. 물론 현재 월곡리 국어선생님과 여학생들 사이에 그런 수줍음은 남아있지 않다.
이날 ꡐ월곡리 국어시간ꡑ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글을 가르치는 한 노인회장의 봉사정신만이 아니었다.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이 함께 즐거워하는 표정과 조용한 농촌마을이 ꡐ배움ꡑ을 통해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 그리고 할머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감을 가져가는 수확이었다. 수업시간으로만 봐도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는데 일반 대학에서 연강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의 수업을 연로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소화하고 있었다. 그것도 즐겁게...
ꡐ월곡리 국어선생님ꡑ 안영환씨에게는 바람이 있다. 바로 자신의 수업을 듣는 여학생 할머니들이 자신의 말이 모두 맞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한마디 한마디 걸러 들었으면 한다는 것.
언젠가 월곡리의 국어수업은 끝날 것이다. 그리고 안영환씨 역시 분필을 놓을지 모른다. 그러나 월곡리 노인회관에 만들어진 ꡐ배움의 시간ꡑ이 이 마을과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안겨주었던 활기와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김항룡 기자 hrkim@dj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