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건 오 전 당진축협 감사실장 학래산방(鶴來山房)은 나의 서재(書齋) 이름입니다. 비록 곁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없어도 부용화 핀 연못이 없기는 하지만 그곳에 머물면 마음이 언제나 넉넉하고 너그러워집니다. 사랑하는 내 동무 지오(池吾 못난이)가 나보고 한 번 사는 삶인데 우아하게 살아가자고 하면서 당진군 가학리 산모퉁이에 지은 나의 누옥(陋屋)의 서재를 위해서 휘필(揮筆)하여 준 것이 학래산방(鶴來山房)입니다.
옛 선비처럼 풍류 있는 초당(草堂)은 아니지만 서재라는 이름으로 내가 차지할 공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혼자서 만족하는 것이지만 마음을 그곳에 담아두고 글을 쓸 수도 있는 풍광(風光)이 곁에 있어서 좋습니다. 이른 봄이면 달빛 속에서 바라보면 제격인 푸르름을 은은히 간직한 청매(靑梅)가 꽃이 핍니다.
매화의 꽃이 시들어 가는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낄라치면 목련이 핍니다. 자목련은 자목련대로, 백목련은 백목련대로 넉넉하게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그리고는 자두, 살구, 그리고 애기사과꽃까지 마당이 벅차다 싶도록 가득하게 피면 봄이 지납니다.
그 사이에 아카시아 향기는 뜰 안을 가득 채우다 채우다 못해 안방이며 서재까지 가득히 넘쳐 들어옵니다. 밤꽃 향기까지 겹치면 부지런한 꿀벌의 천국이 되기도 합니다. 어디서 꾸어오지 않아도 꾀꼬리가 오면 뻐꾸기도 앞 숲에 와서 울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여름의 시작입니다. 작년에 왔던 그 녀석 들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 목소리를 들으니 작년 그 녀석들이 아니라면 그 녀석들의 새끼임은 틀림 없습니다. 여름은 뜰 한가운데 있는 후박나무의 넉넉한 그늘이 산자락에서 겨드랑이까지 시원하도록 마실 나온 바람을 불러 모읍니다.
뜨거운 여름 해가 지면 마당에 평상(平床)도 마다하고 자리를 깔고 눕습니다. 그리고는 베어 말려 두었던 쑥대로 모깃불을 피웁니다. 그래도 여름은 매캐한 모깃불이 있어야 격이 맞습니다.
그때부터는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모여들고 두런두런 세상사는 이야기들이 엮어집니다. 텃밭에 심었던 하지 감자가 손이 데일 듯이 뜨겁게 소쿠리에 담겨 나오고 아내는 아직도 설 익은 것이라면서도 자주색 옥수수를 쪄서 내옵니다. 그러면 별을 헤던 조카녀석들의 환성이 터집니다.
그렇게 서재 밖의 여름 밤이 익어 갑니다. 이렇게 짧은 여름밤이면 주책없다고 아이들이 이야기 하는 수탉은 때없이 울어서 그나마 더 잠을 설치게 합니다. 해진지 얼마가 안됐는데 해가 또 떠올라야 한다고 재촉을 합니다.
밤마다 모닥불 연기와 모깃불 쑥 향기에 분주했던 여름은 방학이 끝나면서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 오고 서재 밖도 이제는 차분한 결실을 기다리는 가을로 접어듭니다. 가을은 언제나처럼 파란하늘과 빨간 고추 잠자리로 시작됩니다. 이제는 마당에 널어 놓는 빨간 고추의 모습으로 서재 밖의 풍경이 바뀝니다.
달밤이면 닭장 지붕 위에는 하얀 배를 내밀고 있는 박이 아직도 더 결실을 맺기를 원하는 늦은 박꽃과 함께 넉넉함을 더해 줍니다. 가을의 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풍요한 가을과 함께 가을걷이의 즐거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서재 주위에는 단풍이 들고 낙엽은 아름다움으로 한 해를 셈합니다.
밤을 주으러 나서며는 청설모도 주워가고 나도 주워옵니다. 언제나 잣나무에서 영글기도 전에 따간다고 두런대면서 호두열매가 열었으니 잘 익으면 따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번번이 청설모의 식량으로 모두 주고 말면서도 그저 서재 밖은 그것으로 풍요합니다. 가을에서 겨울은 이제 학래산방이 제 몫을 하는 계절이 됩니다.
길어진 밤으로 인해서 나에게는 여유로운 시간이 늘어나고 삶을 되 짚어 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시도 읽어보고 그리운 사람에게는 편지도 씁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이 찻물을 올려 놓고 벗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짧은 겨울 밤은 소리없이 내리는 눈과 함께 어느덧 주위에 내려 앉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떠난 주인없는 서재입니다. 자주 가보고 싶지만 나는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한 달의 선고된 삶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그대로 이지만 주인 없는 서재는 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수의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는 체외수정을 연구했다.
일본 북해도 낙농학원대학에서 전자 현미경으로 생식세포의 단계별 변화를 연구했다. 당진에서 동물병원을 개설·운영했고 당진축협배합사료공장장을 맡기도 했다. 국내 유전자변형연구에 참여도 했고 국립공주문화대학 애완동물과와 공주대학 특수동물학과에서 10년 넘게 강의를 했다.
말기 폐암으로 1개월의 생존을 선고 받고 하루 하루를 이어 가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30년을 넘게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학래산방(鶴來山房) 에서 살다가 지금은 경기 안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