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정년퇴임, 한문교육 위해 매일 송악초교 출근
김진용(73, 송악면 중흥리)씨는 45년전 교사의 길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6년 전인 지난 99년 정년퇴직했다. 1960년 송악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이 학교에서만 32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일한 다른 학교도 상록초, 전대초, 기지초 등 인근학교였다. 중흥리에서 태어나 한 곳에서만 살아왔고, 평생을 고향에서 보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씨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씨에게 자녀를 맡겨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는 자녀의 부모까지 김씨가 가르친 경우도 있다. 그 뿐만 아니다. 김씨가 유명한 이유는 퇴임 후 더 왕성한 그의 활동 때문이기도 하다.
교사의 길 걸어가는 ‘은퇴교사’
그는 매일 아침 8시에 송악초등학교로 나간다. 아침 일찍 가는 이유는 아이들의 특기적성교육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특기적성교육 중 하나인 한문교육을 맡고 있는 것. 아침 9시까지 계속되는 이 수업에는 약 16명의 학생들이 그의 지도를 받고 있다.
또한 금빛봉사단원이기도 한 김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당진도서관에서 한자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지금은 나가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는 인근 동부제강 당진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한자교실을 열기도 했다.
한자교실 뿐만 아니라 인근 경로당을 다니면서 노인들에게 서예교실과 함께 게이트볼을 가르쳤다. 김씨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송악에 게이트볼을 들여온 게 바로 나야.”
김씨의 노력 덕분인지 게이트볼을 치는 인구가 점차 늘고 급기야 작년에는 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교사의 보람은 역시 제자들
그렇게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해왔지만 김씨가 생각나는 것은 하나 뿐이라고 한다. 자기가 졸업시킨 제자들이 다시 자기를 찾아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것.
지금도 그는 제자들에게서 보람을 얻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제자들을 자랑하고 싶은 듯, 송악초등학교 다목적실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소개해줬다. 그 중 한 아이는 서예대회에서 금상을 타기도 했다면서...
그에게도 있는 남모를 아픔
벌써 15년이 지났다고 한다. 잊혀진 것 같지만 잊혀지지 않은 듯한 일이다.
15년 전, 당시 군대에서 장교로 일하던 둘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한다. 조심스레 그 당시 사건을 이야기하는 김씨에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는 듯했다. 2남2녀를 둔 김씨가 29살이던 아들을 잃은 것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작은 아들을 보기 위해 일년에도 몇 번씩 아내와 함께 대전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때의 충격을 잊기 위해서 더욱 일에 매달렸다는 김씨는 틈이 나는대로 대전을 찾았지만 이제는 일년에 두세번씩 방문하고 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섰지. 집에 있으면 아들 생각이 나서 말이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문인화 배우는 학생이 되기도
항상 교사였던 김씨는 요즘은 잠시 학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당진문화의집이 운영하는 문인화교실에 나가기 때문이다. 서예에 조예가 깊은 그 인지라 오히려 수월하게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시작한 지 2개월 남짓됐다는 김씨. 항상 다른 사람을 가르쳐주었던 그인지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어색할 법도 하련만 오히려 더 열심히 배우고 있다.
“힘닿는 데까지 계속할 것”
김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앞으로도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나이 일흔 셋. 그 정도 나이가 되면 흔히들 “이제 그만 은퇴하고 편하게 쉴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무대 뒤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 한 그의 교사인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