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인지 게을러서인지 개나리, 진달래도 못보고 봄을 보냈는데 여름의 전령인 아카시아와 찔레꽃도 못본터라 운전을 하면서 지금은 무슨 꽃이 피었을까 살피던 중 도로곁에 널찍한 콩밭을 만나게 되었다. 내겐 콩하면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몇해 전 정말 부족하기만 한 내가 우리동네 부녀회를 맡게 되었다. 기존 회원들은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줘야 한다’며 빠지면서 젊은 세대들이 회원으로 구성되었고 우리 회원들은 소득사업으로 500여평의 휴경지에 콩을 심게 되었다.

이곳은 말만 농촌이지 회원들이 모두 상업에 종사하다보니 시간들이 없었고 또 젊은 새댁들이라서 종자콩을 가져다 놓았더니 콩인지 팥인지 분별을 못하는 회원이 대다수였다. 이랬던 우리가 비가 내린 다음날 콩을 심었고 얼마후 초록으로 하나가 된 콩밭 1차 잡초제거를 하게 되었다

1·2·3조 회원들은 밭을 매고 4·5조 회원들은 점심식사와 간식을 맡았기에 한참 밭을 매고 있었다. 헌데 영자엄마라고는 절대 말을 못하겠는데 그가 “으매, 시원한 것 이걸 워쩐댜”해서보니 내내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다가 바지가 찢어지는 사고를 내고 말았는데 글쎄 터진 바지의 위치가 우리가 소위 말하는 된장독 근처였던 것이었다.

‘아예 벗어라’, ‘입어라’ 입을 모으던 우리들은 마침 세탁소를 하는 회원이 있어서 벗겨서 꿰매러 갔고 그러는 사이 4·5조가 점심을 해가지고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헌데 회원 하나가 “코가 크면 코딱지가 크다더니 어디가 크니까 속옷이 크구나”해서 또 콩밭이 떠나갈 듯 웃었다.

참 여기서 그때 영자엄마의 몸무게는 75㎏이었다는 것을 살짝 공개한다.

점심식사 후 우린 냉커피 한잔씩을 마시며 마주보는 분위기는 화합과 친근감으로 하나가 된 것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다시 밭을 매던 중 회원 하나가 금반지를 캐내고는 소리를 쳤다. “금봤다” 달려가 본 우리들은 너무나 좋아했고 그는 반지를 팔아서 회비로 쓰라고 내게 주었다. 산삼은 신이 점지해 준다는데 반지는 누가 점지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부녀회는 다섯돈 짜리의 반지를 판 돈과 콩을 수확하여 판매한 돈이 뭉쳐져서 갑작스레 큰 자금이 마련되었다.

밭을 매다가 큰 지렁이가 나오면 “언니, 이것이 해삼이야?”하고 물으며 농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우리 회원들은 콩을 심어 기르며 농사꾼이 다 되었고 그들이 이 자금으로 연말에 찾아 볼 독거노인 가정과 불우이웃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도 너무나 행복했었다.

나는 앞으로 정말 선한 사업에 많은 일을 해야 하지만 그때 일은 두고 두고 내 마음에 남아있어 힘들고 지칠 때 기억에서 꺼내보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와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꽃을 보고자 한 것이 콩으로 대신되었지만 어느새 나는 ‘콩밭매는... 아낙네야’라는 유행가를 흥얼거렸고 즐겁게 읍내를 다녀왔다.

※남편과 함께 송악면 중흥리에서 중식집 ‘금자탑’을 2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풋풋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길 즐긴다. 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