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에 가서 하루 자고 와야 되는데 오늘밤은 우리집에서 주무시면서 아버지 좀 봐주세요. 혹시 밤에 밖에 나가실지 모르니까 문단속도 잘하시고 신경 좀 써주세요”하시는 아주버님한테 “걱정마시고 다녀오세요. 일찍 가볼께요”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저녁때가 돼오기에 비디오 가게에 들러서 비디오도 하나 빌리고 만화책도 한보따리 빌린 후 큰집으로 갔다. 아버님 저녁 진지를 차려드린 후 이부자리도 깔아드리고 TV 음량도 조절해 드리고 자리에 누우시는걸 보고 빌려온 여러권의 ‘초밥왕’과 또 ‘핫도그’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아이들처럼 낄낄거리며 읽고 나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내딴에는 아버님을 지킨다고 왔는데 일찍 잘 수도 없고 해서 비디오까지 보고나니 밤이 깊었다.
살며시 방문을 열어보니 아버님은 주무시기에 세면실엘 들어갔다. 거기에는 고무통의 커다란 욕조가 놓여있고 한쪽 구석에 말린 장미꽃 한 다발이 걸려 있었다. 순간,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 욕조에 더운물을 채우고 장미꽃 말린 것을 후두둑 후두둑 따서 띄운 다음 예쁜 유리컵을 골라 커피 한잔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욕조에 들어가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무슨 왕비라도 된듯 우아한 폼을 잡다가 나와보니 새벽 두시가 넘었다. 또 아버님 방문을 살며시 열었더니 주무시고 계시기에 나도 눈 좀 붙여야지 하고는 좀 잤는데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평소에 새벽교회를 가려고 4시반에 맞추어 놓았던 것이다. 알람을 꺼놓고 다시 잠을 자려던 나는 아버님을 확인해야 할것같아 비틀비틀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니 방이 텅 비어있는 것 이 아닌가. 순간 머리에서는 쥐가 나고 당황하여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우선 집 주위를 살핀 후 낮에 자주 가시는 장소를 찾아봤다. 그러나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 시간에 아주버님한테 전화를 드리자니 놀라서 내려오실테구 이장님한테 방송을 부탁드리자니 워낙 새벽시간이라 그럴 수도 없고 앞이 캄캄했다. 아직 운전이 서툴러 어딜가려면 겁부터 나는데 그런건 문제도 아니었다.
우선 기지시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차안에서 행인이 있나 자세히 보며 가학리 회관까지 왔는데 그곳 나무 밑에 아버님이 앉아 계셨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아버님을 번쩍 안아서 차에 태운 후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것이 감사했는데 막상 찾고 보니 원망이 나와 어딜 가시려 했느냐, 사고라도 나셨으면 어쩔뻔했느냐, 왜 하필 오늘 나가셨느냐고 따졌더니 “구경허러갔지”하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셔서 자리에 누우셨다. 그때서야 나도 온전한 정신이 돌아와 우유 한잔을 데워다 드리고 다리가 아프실 것 같아 주물러 드렸더니 금방 잠이 드셨다.
아기가 엄마품을 천국으로 알듯 아버님도 아버님 방이 천국인 것처럼 주무시는걸 보니 아까 쏘아부쳤던 말들이 얼마나 죄송한지 정말 부끄러웠다. 아침상을 차리면서 ‘하나님 이놈의 혈기와 이놈의 죄성을 버리게 해주세요.’ 기도했고 식사 후 커피 한잔을 타 드리며 드시라고 했더니 “숟가락두 줘. 뜨거워서 떠먹어야 혀”하시며 떠 드셨고 나는 후룩후룩 마시다 보니 부엌에 커피향이 가득했다.
※남편과 함께 송악면 중흥리에서 중식집 ‘금자탑’을 2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풋풋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길 즐긴다. 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