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모자를 눌러쓰고 기력이 하나도 없이 걸어오는 분. 그가 아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그를 알았고 사귐이 있었으며 고통이 따랐었다.

나의 직업관계로 우리들은 첫 새벽에 만나야만 했다. 푸르디 푸른 나이. 그 모진 잠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새벽에 일어나려면 얼마나 고단한지 절교를 선언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헌데 그 분의 사랑이 내게 너무도 크고 벅차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를 깨우는 새벽의 전화벨 소리 한번, 그 소리가 스트레스에서 설레임으로 바뀌기까지는 일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가 조금 늑장을 부릴 때면 말없이 가로등 밑에서 기다려 주었고 언제나 웃으며 반겨주었다.

어느 초겨울. 그날도 어김없이 만나자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평소의 시간 같지가 않았지만 남편이 깰까봐 조심조심 얼굴을 씻고 옷을 골라 입고 집을 빠져 나왔다.

조금 걷다보니 순찰 중이던 경찰 한 분이 “두 분 수상하신데요. 조사할 것이 있으니 파출소로 가시죠”하기에 근처 파출소까지 따라갔다.

“늘 4시 반에 만나시더니 오늘은 왜 3시 반이에요? 착각하신 것 같아서 일부러 모시고 왔으니 차 한 잔 드시고 시간 맞추어 가세요. 밖이 춥잖아요”

우린 많이 웃었고 그 경찰분도 한 때는 우리처럼 새벽형 인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하면 ‘피식’ 미소가 터지는 많은 ‘사건’들을 일으키며 우리들은 3년이 넘게 새벽데이트를 하였다.

문방구를 지나 모퉁이를 돌고 또 약국을 지나면 두개의 가로등이 있고 드디어 우리들이 들어가는 건물이 있다.

교회다.

그 분은 그렇게 나를 살려놓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주었는데 식당일이 바빠지며 그를 소홀하게 대했다. 그가 이제 할머니가 되셔서 아프시다.

내일은 멋진 양산이나 사가지고 가서 모자대신 쓰시라고 하고 그 분을 위해 기도를 준비해야겠다.

※남편과 함께 송악면 중흥리에서 중식집 ‘금자탑’을 2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풋풋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길 즐긴다. 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