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일이 늦게 끝날 것 같다면서 아버님 저녁 걱정을 하는 시댁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차려드리겠노라고 하고 아버님댁으로 향했다.
도착해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코까지 고시면서 주무시고 계셨다.
얼른 생선찌개를 끓이고 계란찜을 하여 저녁상을 차려놓고는 “아버님, 아버님”하고 불렀으나 전혀 듣지 못하셨다. 올해 연세가 92세이신 아버님은 형님네 가족과 가끔 우리가족만 기억하시고 귀가 좀 어두우시다.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으로 들어가 아버님 덮고 계신 이불을 제꼈다.
그랬더니 노인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확 올라와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젠 살금살금 숨을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아버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버님, 아버님 진지드세요”하는데 앙상한 뼈가 손에 들어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손을 툭 떼고 말았다. 그 촉감은 무서움과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않은 두려움, 뭐 그런 느낌이었다.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쩜, 그래도 그렇지 아버님을 보고 무섭고 두렵게 느껴져서야 어찌 며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난 겨우 저녁 한끼 차려드리러 와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데 형님은 이발에서 목욕, 끼니마다 챙겨드리며 돌봐드리니 그 어려움이란... 같은 동네에 살아서 마음만 먹고 움직이면 아무 때나 뵐 수 있으련만...
나를 잘 못 알아 보신다는 이유로, 형님이 잘 모신다는 이유로 특별한 날 외에는 자주 건너가 뵙질 못했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아버님께서 진지를 다 드셨기에 식탁을 정리하고 녹차 두 잔을 만들어서 아버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찻잔을 드리려다 아버님 손을 살며시 잡아봤다. 야위고 가벼웠다. 이젠 두려움도, 무서움도 사라졌고 냄새 때문에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도 진정이 되어 있었다. 아까는 친정 아버지와는 달라서 진심은 없고 며느리의 도리로만 대해서 그랬던가 보다. 정말 죄송한 마음으로 아버님의 손을 놓고 웃으면서 차를 마시고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아버님이 나를 붙드셨다.
그리고는 방안의 서랍장을 여시더니 바나나 세개와 방울토마토가 담겨있는 접시를 꺼내주시며 “집이 애덜 갖다줘유”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님, 애덜 다 커서 서울에 있어요. 아버님 드세요”, “애덜읍는 집이 워디 있대유. 가지구 가슈”
모두가 가난했고 어려웠던 시절, 줄줄이 6남매를 기르시며 힘드시고 고단하셨을텐데 이제 자식들이 다 장성하였건만 어느 사이 아흔을 넘기시고 외로움도, 괴로움도 모르신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시며 며느리인 내게도 존대를 하시는 것을 뵈오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과일 접시를 안 가지고 오면 아무래도 서운해 하실 것 같아 가지고 나오면서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르지만 생을 마감하시는 그 날까지 자주 찾아뵙고 좋은 며느리가 되어보리라 마음 먹고 힘차게 차에 올랐다.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데 아이들이 툭툭 튀어나왔지만 급정거를 하는 것도 즐거웠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남편과 함께 송악면 중흥리에서 중식집 ‘금자탑’을 2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풋풋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길 즐긴다.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