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엔 나도 잘 나갔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나는 왕년이나 지금이나 잘 나간 것이 없고 변한 것이 없어 걱정이다.
난 얼마나 덤벙대고 만사가 대충대충인지 ‘어이쿠’하면 술병이라든가 물컵이라든가 그릇들을 깨뜨린다. 오죽하면 남편이 유리컵 열개를 사다놓으면서 “하루에 한개씩, 이거 열흘치야”했으랴.
거기에 천천히 훑어보고 확인하며 따져보는 그런 성격도 못돼서 진짜같은 가짜상표에 그냥 넘어간 적도 수없이 많다. 모나리자 화장지인 줄 알고 사왔더니 모나리지였고 아놀드파마것인 줄 알았는데 아놀드파라솔이었으며 어느 때는 금강제화인줄 알았는데 금광이었다.
이렇게 몇번 실수를 하고서도 계속되는 나의 대충대충 사는법은 고쳐지지가 않는 것을 보니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고 태양의 힘을 빌리든가 달의 힘을 끌어다 고쳐야 할 듯하다.
오늘도 8월을 생각하니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도 지났고 여름의 끝이라는 말복도 지났는데 주방안은 여전히 더웠다.
냉커피 한 잔을 따라가지고 에어컨 앞으로 나와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얼마 남지도 않은 더위한테 발길질을 하고 주먹질을 하다가 또 나의 특기로 커피잔을 쓰러뜨렸다.
헌데 마침 방학이라 집에 있던 아들녀석이 휴지를 가져다가 닦아주면서 “엄마, 영화 올드보이가 잘됐다는데 저녁에 그거나 빌려다줘유”했다.
나도 안봤기에 저녁 일을 끝내고 비디오가게에 가서 올드보이를 빌리고 과일도 좀 사고 먹을 것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굳이 안보겠다는 남편을 일으켜놓고 일하는 아이도 불러놓고 테잎을 넣고는 “내가 주인공 최민식씨 팬여”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 다른 영화 예고편도 없이 갑자기 벌거벗은 남녀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 앞이라 너무도 놀라서 후다다닥 테잎을 빼서 자세히 제목을 봤더니 올드보이가 아니라 올 누드보이였다.
대충대충한 것이 또 한번 증명되었기에 얼굴이 뜨거워져 “아니 제목을 어쩌면 다 속게 만들었다니?”하며 꿍얼꿍얼댔더니 아들녀석이 “그럴 수도 있지. 왜들 그려. 난 좋기만 하구만”하면서 이상해진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난 얼른 가서 진짜 테잎으로 바꿔왔는데 남편도 드러눕고 일하는 아이도 안 본다고 나가 버려서 아들과 둘이 봤는데 뭐가뭔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이런 나의 온전치 못한 습관 때문에 오랫만에 가족끼리 영화 한편 보려던 것이 깨졌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면 정신이 차려질까 모르겠다.
※남편과 함께 송악면 중흥리에서 중식집 ‘금자탑’을 2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풋풋하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길 즐긴다. 대학에 다니는 남매를 두고 있다.
※‘이시순의 우리네 사는 이야기’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좋은 글 주신 이시순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