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앞을 지나기 한 정거장 전부터 눈을 떼지 않고 간판을 읽어내리는 것은 이곳으로 이사한 후에 생긴 습관이다.
그중에서 ‘성인용품’이라고 노란색으로 도배를 해 놓은, 언뜻 보기엔 입구도 없어 보이는. ‘배달가능’만 크게 적어놓은 그 집. 그 옆 샛골목으로 하루에도 몇번이고 들고 났던 30개월짜리 동네...
1989년 3월에 삼촌댁에서 분가하기 위해 방을 얻으러 다니던 때. 초록대문에 [잠자는 방 있씀] 어눌하게 적혀 있던 집.
자취방을 구하고 있던 나는 방이 없길래
초록대문을 가만히 밀었다.
작은아들이 쓰던 가운데 방을, 부엌으로는 마루 한켠을 뚝 잘라 주시던 할머니.
골목으로 돌아나는 쪽창문과 햇살 넉넉하던 남향집.
버젓한 현관문은 내 방이 닿아 있어 나만 쓰고 주인집 식구들은 부엌으로 가서 신을 벗은 게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아들이 군대에 갔다.
...
전기밥통 사라고 주신 돈을 홀랑 써버린 탓에 곤로 위에 냄비밥을 해야 했고.
밥이 다 되면 국을 올려서...
둘레 밥상을 차릴즈음엔
적당히 식어버린 밥과 따끈한 국,
늘 쉬어 있는 김치.
마른반찬 한가지 정도...
마주앉을 그 누가 없어 잉크냄새가 손에 묻어날 만치 새뜻한 朝刊과 겸상했다.
강의가 할랑한 날 친구들 데리고 와서 라면이라두 끓일라치면 오물세 많이 나온다며 싫은 내색하시던 할머니.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듯한 아침에 보란듯이 옥상에 널어놓고 간 빨래.
후두둑 소나기의 출발신호가 무섭게 걷어 내려서 내 방에 가지런히 펴주시던 할머니.
제사한 날 아침이면 꼭 아침밥상에 불러주셨던 할머니. 생선 좋은 놈 밥그릇 가까이 당겨 주시던 할머니.
추석을 하루 앞두고 고향가려 분주한 내게 김이 모락거리던 송편대접 건네주시던 할머니.
내가 드린거라곤 곤로 위에 노란 주전자 올려 놓고 만들었던 구수한 커피 한잔.
연탄불 갈 걱정없던 30개월.
작은아들이 제대할 즈음 그 집을 나왔다.
...
롯데백화점 부지에 할머니네 집도 포함되었을까..
궁금하여 더듬더듬 갔더니 담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네 집은 건재해 있었다.
저번에 찾아뵈었을 때는 작은아들 내외가 같이 살았고.
그 앞서 찾아뵈었을 때는 할아버지가 야간경비일을 그만 두셨고,
이번에 갔을 때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이 참에 땅이 들어갔다면 좋았으련만..
아니 기억의 한자락이 남아있어서 다행인가...
롯데백화점 로고처럼 always with you.
석유곤로 그을음처럼 스치기만 하여도
온통 묻어나는 외딴방에서 30개월...
※경북 포항에서 살다가 남편 직장을 따라 지난 3월 송악면 중흥리에 둥지를 틀었다. 일상의 소소한 감동들을 수필이나 시로 옮기길 좋아한다. 열두살, 열살 난 자매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