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지난 7일 충북 옥천군을 찾았다. 정 전 비서관은 우리 정부와 미 정부를 대표한 협상단이 교섭을 진행 중인 한미FTA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옥천주민들을 위한 강단에 섰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한미FTA, 판도라의 상자를 어찌할 것인가’라는 강연을 통해 FTA의 참모습을 주민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날 강연을 옥천신문의 백정현 기자가 정리해 보내왔다.

◆한미 FTA, 낭떠러지가 기다린다

정부는 제조업 상품의 수출을 위해서 한미FTA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다. 이 협상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에게 ‘이대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정부의 이런 선전이 어느 정도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부는 일부 지엽적인 사실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나머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한미FTA와 관련해서 정부의 주장처럼 여기서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곳은 바로 우리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얼마 전 문화방송 100분 토론회에 출연해 이 문제로 통상교섭본부 대표라는 사람과 토론을 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관료는 우리의 제조업 수준이 미국에 경쟁력을 가진다고 주장했지만 큰 착각이다. 자동차 중 소형차 부문, 반도체 중 D램, 조선 중 일반 벌크 선박부문, 철강에서 일반철강 부분이 경쟁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분야들조차 정말 돈이 되는 고부가가치 영역, 예를 들면 특수선박, 특수강,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는 경쟁력을 언급하기가 힘든 수준이다.

핸드폰 정도가 제대로 된 경쟁력으로 평가되지만 제조업 분야에서 물건 중 몇 개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제조업 전 분야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미국이 80년대 이후 지적재산권, 투자, 서비스 세 가지 분야에서 총력을 기울여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를 ‘신이슈(New issue)’ 분야라고 하는데 여기서 우리와 미국이 갖는 경쟁력의 격차는 제조업의 그것과는 비교하기조차 힘든 수준이다. 신이슈 분야는 관세의 영역과는 무관하다.

이 세 분야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관세를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변화시켜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가진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국적기업으로 투자능력을 보유한 나라, 역시 세계최고 수준의 서비스업을 보유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상은 결국, 우리 삶을 미국이 보유한 지적재산권, 투자, 서비스 분야가 적용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제조업 분야에서 관세를 없애 한국 시장에 미국의 물건을 더 수출하는 것이 미국의 관심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미 어느 나라보다 자국의 제조업과 관련해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의 진짜 관심은 세계적으로 아직 눈에 띄는 교역이 없는 위 세 가지 분야에서 우리와의 FTA를 통해 국제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회가 공식적으로 “한미FTA는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원하는 변화는 우리의 건강, 삶의 질, 그리고 나아가 사법권, 외교환경, 국가 주권, 사회 양극화 등 어느 하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런 미국과 아무런 준비 없이 협상하는 것, 그것은 미친 짓이다. 죽으러 가는 길이다.

◆협정체결의 미래상, NAFTA 보라

당연히 나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은 미국과의 협상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를 모른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은 우리와 나프타(NAFTA.북미자유협정)보다 훨씬 강력한 협상을 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점, 대부분 협상에서 얻고자 하는 자국의 이익을 상대국에 양보한 경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멕시코와 캐나다에 닥친 변화보다 더 큰 변화, 더 큰 부작용이 닥칠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미FTA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현재로선 나프타 말고는 없다.

멕시코는 나프타 12년 만에 수출이 늘고 투자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경이적인 수치로 표현되는 이 모든 성과는 멕시코 북부 공업지역 마킬라도라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수출과 투자를 통한 수입은 모두 다국적 기업의 차지가 됐다. 우리 기업을 포함해 전세계의 초국적 기업이 결집한 마킬라도라는 95% 이상의 원자재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전 세계로 수출했다. 물론 그 물건들은 멕시코 시장에도 쏟아졌다. 당연히 대부분의 멕시코 제조업이 몰락의 길을 걸었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최저수당을 받으며 마킬라도라에서 일을 하거나 노점상으로 전락했다.

농업도 붕괴됐다. 주식으로 수입이 금지된 옥수수는 나프타로 열렸고 값싼 미국산 옥수수가 멕시코를 잠식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주식에 지불하는 돈은 오히려 늘어났다. 값싼 옥수수를 대중에 공급하는 기능을 했던 공기업(우리의 농산물유통공사처럼)이 멕시코 재벌에 판매됐고 이 재벌은 미국의 옥수수 재벌과 손을 잡고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복지국가 캐나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를 상대로 한 초국적 기업의 소송이 급증했고 이런 추세는 문화, 금융, 도박, 담배 등으로 국민의 실생활에 밀접한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