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진 할아버지와 생활관리사 윤미숙(좌)·신현분(우)씨
▲ 박인진 할아버지와 생활관리사 윤미숙(좌)·신현분(우)씨

할아버지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루에 앉아 계셨다. 작은 텃밭에는 벌써 시금치와 상추가 돋아나고 있었고, 한켠에는 참깨가 싹을 틔우고 있다. 순성면 봉소2리 외딴 산자락 아래 작은 집에서 박인진(88) 할아버지는 혼자 세월을 보내고 계시다. 일주일에 두어번 당진군사회복지협의회 생활관리사 윤미숙(47) 씨가 전화를 걸어오고 종종 봉사단체 회원들이 찾아오지만 할아버지는 늘 외롭다.

“명절이나 어버이날이라고 다를 건 없어. 나한테는 그날이 그날이야. 늘 외롭지.”

박인진 할아버지가 혼자가 된 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이제는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하나 있던 아들도 지병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다 먼저 세상과 이별했다. 며느리와 손자들이 살아 있지만 연락은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연신 가족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숨기지는 못하셨다.

할아버지를 곁에서 여러 해 지켜봤다는 윤미숙 씨도 이런 할아버지의 가족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품안에 자식이지, 다 크면 아무 소용없다”며 “오히려 매일 같이 찾아와주고 반찬 만들어다주는 봉사자들이 자식보다 낫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요즘 호흡이 가빠져서 병원에 다니신다.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읍내리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데 40여분이 걸린다고 했다. 얼마 전 병간호를 해준다는 시설에 가셨었지만 마음도 맞지 않고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 한방에서 사는 게 힘드셔서 다시 외딴 집으로 돌아오셨다. 밤새 기침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싫어할까봐 내심 눈치가 보였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바라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다른 거 하나도 바라는 것 없다 하시면서도 오래전에 떨어진 보일러 기름 한 드럼만 있으면 가을까지 거뜬히 지낼 수 있을 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한동안 할아버지와 윤미숙씨, 신현분씨는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밭에 깨가 익으면 윤씨와 신씨가 와서 깨를 털어주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 걸려온 사기 전화 이야기를 꺼내셨고 윤씨는 절대 시키는 대로 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서는데 봉사자들이 사다줬다는 카네이션이 수돗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채 벌써 시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