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소리판이 남긴 것

남연숙

방송작가, 당진읍 원당리 청구아파트

서구의 선진화된 나라에서는 한 도시를 계획할때 주택과 더불어 공공도서관과 각종 공연 및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문예회관 같은 시설이 필수로 지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문화생활이 일상화되어 생활과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철저히 계획된 분당 신도시는 어떤가? 거대한 아파트 군단에 이어 각종 쇼핑센타, 할인점, 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이제서야 할 수 없이 문화시설이라는 것을 세운다고 한다.

우리 당진은 어떤가?

매년 9월에 열리는 상록문화제는 가장 잘 알려진 당진군민의 유서깊고 대표적인 문화축제이다. 그런데 이 문화제에 할당된 지원금이 겨우 사천오백만원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는 매우 놀랐고 우울하였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저 형식적으로 있으면 좋은 그런 가치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지난 토요일 오후, 당진군민회관에서 있었던 ‘장사익 소리꾼’ 공연을 듣고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문화적 생활에 낯설고 어설프고 또 낙후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군민회관 일층은 이미 만원이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 들어서는 순간 당혹감에서 잠시 어쩔 줄 몰랐다. 의자가 아니고 계단으로 만들어진 좌석이었던 것이다. 저기에 웅크리고 앉아서 두시간을 버티란 말인가. 할 수 없이 앉을 자리라도 있는게 어디냐 하고 마음을 고쳐 먹고는 대학축제에서도 내노라하는 가수들을 제치고 단연 인기 최고라는 공연을 기다렸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됐는데도 아이들은 놀이터 마냥 놀고 있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그래도 몰두하려 정신을 바짝 차리는데 엉덩이에 오르는 냉기 때문에 자꾸만 신경 쓰였다. 하지만 창(唱)도 아니고 대중가요도 아닌 장사익만의 그 독특한 소리에 신선한 전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기타와 큰 북의 오묘한 조화 속에서 절절이 내뱉는 한(恨) 같은 울림에 가슴 뭉클해지려 했다.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 울었네. 목놓아 울었네~ 당신은 찔레꽃”

그 애절함에 핑그르르 눈물이 돌려는 순간 “삐리리리 삐리리리”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깜박 잊고 끄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 휴대폰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젓이 뭐라고 통화까지 하는 것이다.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여기저기 휴대폰 소리는 장단을 맞추는 듯 심심치 않게 울려댔고 무대 바로 앞에서는 공연중에 대여섯명이 시끌벅적하게 우루루루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 아기 울음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휴대폰 소리, 통화하는 소리...

장사익씨는 공연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완곡하게 도움을 부탁했고 후에 사석에서 사운드 상태가 좋지 않아 가장 힘든 공연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그 사운드는 관객에게 나오는 소리를 포함한 것이었으리라.

그렇다고 관객의 매너가 형편 없었다고만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 두시간이 넘는 동안 꼼짝없이 앉아있기에는 객석이 너무 불편하고 추웠다. 편안하게 앉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문예회관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지나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세금내는 한 시민으로서 문화생활을 누리려는 당연한 권리이다.

21세기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창의성과 직관력,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한 미적감각과 상상력, 창의력은 어려서부터 평소 접해온 문화생활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이제 문화예술은 더이상 홀대받는 분야가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위해 투자할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