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친정엘 갔다. 우릴 보겠다고 처가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오빠네 식구랑 늙은 오디나무를 털었다. 언니는 그 중 잘 익고 물 오른 것을 골라 담다가 나더러는 무엇에 쓰려냐 묻길래 오디쨈을 만들어보련다 했더니 여기 고르고 남은 것 죄다 넣고 끓이란다.

원래 쨈이란 건 이런 걸로 쓴다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만들려는 오디쨈은 그런 마구잡이 쨈이 아닌데.. 나도 사소한 것에 목숨 걸 뻔했다.

처음 우리 집 새언니가 되었을 때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게 좀 그랬다.

그 무렵 친구가 준 류진운의 <닭털 같은 나날>은 꼭 언니책만 같아서 주었다.

오디쨈을 두껍게 바르다가 이 책을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인터넷을 뒤적이고 오랜 기억을 보태었음을 고백한다.�������

중국 작가 류진운의 소설집 〈닭털 같은 나날>에 묶인 세 중편은 모두 1990년대 초반에 발표된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생활이 예술보다 더 힘있다”라는 명제에 따른 중국 신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들이다.

〈닭털 같은 나날>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예술가적인 대가의 풍모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으로 원제목인 ‘一地鷄毛’는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인들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닭을 잡은 뒤에 닭의 피와 털이 난무한 곳을 가리키는 말로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하며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상황을 묘사한 말이라고 하는데 허접 쓰레기 같은 일상이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하겠다. 혁명 이후 사회주의 이상이었던 공동체 건설의 꿈은 자본주의적 시장개방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이제부터는 개개인이 알아서 먹고 살아야만 하게 되었다. 대학을 나온 맞벌이 부부인 임씨네는 보잘것없는 일상 때문에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임의 집에 두부 한 근이 상했다’로 시작된다. 통근거리가 먼 직장을 옮기지 못했지만 통근버스가 집 근처에 배정된 것에 기뻐하는 아내, 그러나 사실은 직장 상사가 부근에 이사 온 자기 처제를 배려해 버스를 배정한데 대한 덤이었다는 것에 대한 씁쓸한 분노...�‘고단한 일상’이 연쇄반응처럼 맞물려진다. 특히 암 진료를 하기 위해 베이징에 올라온 옛 초등학교 시절의 은사를 홀대할 수밖에 없었던 임씨가 선생님이 작고하셨다는 그 아들의 편지를 뒤늦게 받으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 작품은 하찮은 일상사를 다루고 있으나 에피소드들이 빈틈없는 인과관계를 가지고 추리소설처럼 조마조마하게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관리들 만세>는 그야말로 중국현대사회의 속살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행정기구의 사무실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투쟁은 주로 권력다툼이 아니라 노선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실은 그것이 허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겉으로는 대의를 위한다고 하지만 자기의 생존을 위해 권모술수와 합종연횡을 마다하지 않는 투쟁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화장실 청소마저도 권력의 향배에 따라 달라지는 중국 정부조직의 권력 지향적 문화를 비웃고 있다.

<1942년을 다시 돌아보다>는 작가 자신의 고향이기도 했던 하남성이 겪었던 1942년의 대기근을 생존한 현지민들의 회상담과 기사, 지방사 사료 등의 자료를 모으고 취재하는 과정이라는 형식으로 여진 독특한 소설이다. 기록문학처럼 보이면서도 작가 자신의 내면적 독백이 평행선처럼 함께 진행되고 능청스럽게도 이 사건을 새롭게 조명해 보려는 의도를 속 깊이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하남성 통치 책임자인 장개석은 기근의 참상을 그저 평상적인 일로 냉정하게 취급했고 오히려 서방 기자들이 그 비극을 바깥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메뚜기 떼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로만 어렴풋이 그 때를 기억하고 있을지언정 그 사건이 반민중적 통치 집단에 의한 정책의 결과였음을 모르고 있다.

「닭털 같은 나날」

저자 류진운 | 출판사 소나무 | 가격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