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나무 십자가

김중회

신평 은수교회 담임목사

뉴질랜드엘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초록담요의 초원, 파란하늘에 뭉게 뭉게 떠있는 흰구름 아래서 한가롭게 풀뜯는 얼룩이 젖소와 하얀 무더기 양떼들이 연출하는 그림은 하늘나라 목장길을 달리는 환상에 빠지게 했다.

거긴 땅위 마지막 무공해의 나라였다. 공장이 전혀 없었고 공장이 있다면 젖소나 양에서 짜낸 우유를 처리하는 유가공 공장 뿐이어서 이름 그대로 환경선진국의 신선한 공기가 폐부에 감미롭게 와 닿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광경은 달리는 도로 양옆에 아주 가끔씩 서 있는 하얀나무 십자가였다. 그게 무언지, 왜 뎅그러니 하얗게 십자가를 꽂아 놓았을까. 궁금증은 우리의 눈치를 그냥 지나칠리 없는 안내원의 설명으로 금방 풀렸다.

설명인즉,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은 지점에 세운 경고용 표지로서 큰 것은 어른, 작은 것은 어린이라는 것이다. 의문이 풀리기 무섭게 퍼뜩 떠오르는 것은 우리나라 도로변 곳곳에 아주 빈번히 서 있는 시뻘건 얼굴의 기다란 세로 팻말들. ‘사망사고 발생장소’의 흉한 모습이었다.

운전자들에게 직격으로 날아오는 사고 많이 나는 경고탄 노릇은 단단히 해낼지 몰라도 썩 유쾌하거나 고마운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위험이나 죽음 조차도 멋지고 여유롭게 표현해내는 저들의 신앙 섞인 의도가 심금을 울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의 생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위험한 고비마다 하얀나무 십자가를 세우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했었기 때문이다.

돈 만능주의, 성공 제일주의, 지역 이기주의, 나만이즘들의 길목에 하얀나무 십자가를 세워야 한다. 거기서 먼저 세월의 무게에 깔려 숨진 영혼들에게는 우선 묵념을 올리고 나서... 서해대교나 삽교대교의 길목은 어떤가? 하나님 자리를 능가하는 공적을 으시대는 무신의 인생들. 정의롭고 선한 마음들이 짓밟힌 물량주의가 판치는 선교헌장,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미화된 인간 욕심의 행사들이 거룩성을 뒤짚어 쓰고 있는 길목에 하얀나무 십자가는 의롭게 서서 인간 죽음을 또다시 경고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공해가 아니라 정화임을 곱게 일깨우고 아름답게 살 수 없는 인간 욕심의 위험한 곳곳에 하얀나무 십자가 세우고 영으로 얻는 새 생명의 표지로 삼았으면 좋겠다. 햐얀나무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