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고문님.
우선 고문님으로 호칭하는 것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대선 때, 노익장을 과시하며 한나라당 후보 지원운동을 하시던 모습이 하도 생생하여 지금도 한나라당에서 원로 고문쯤으로 대우받고 계실 것 같아서 그냥 편의상 올리는 호칭이오니 너그럽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인 1991년 9월쯤, 제가 유학생신분으로 미국 L.A에 거주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2,30명의 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며 L.A총영사관 앞에서 농성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고문님께 “김종필 총재님, 한 말씀하시지요”하는 내용의 편지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비서진에서 차단하여 받아보지도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때 한일회담과 관련하여 고문님의 한 말씀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편지를 드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신대할머니들의 항의에 일본정부는 한결 같이 한일회담 때 다 정산했노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이고 있었으니까요.
당시,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자 분연히 쿠데타를 감행한 박정희 소장을 모시고 조국근대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신 고문님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기억합니다.
그래서 한일굴욕회담의 중단을 요구하는 전국적 규모의 대학생들의 시위를 철없는 대학생들의 순진한 데모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음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독도는 본방(本邦일본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일본정부의 공식문서를 찾아낸 어느 변호사가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들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자 그들은 또 1965년 한일협정당시 피해자보상이 다 끝났다고 주장한다지요?
정말 그 한일회담의 내용 속에 내선일체의 명분하에 강제 징용당한 사람들과, 인간사냥에 가까운 대본영의 사기에 걸려 만신창이된 육신으로 평생을 절망 속에 방치되었던 저 정신대할머니들의 피해보상도 다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언급들이 있었던 겁니까?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그 개개인의 피해보상청구권을 나서서 박탈할 수 있는 겁니까?
고문님, 말씀 좀 해 보세요.
도대체 한일협정이 어떻게 진행됐길래 저들이 그토록 오만하게 나오는 건가요?
누가 뭐래도 고문님께서는 약관의 나이에 당시 일본의 여우 오오히라와 담판을 벌여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뤄낸 우리나라 현대사의 증인이십니다. 그만큼 고문님께서는 왜곡된 현대사에 대한 일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년전 하신 말씀으로 기억이 납니다.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일본은 해저자원이 탐나서 터무니없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지만 우리에게 독도는 우리의 가슴이요, 심장입니다.
그 심장이 터져나가는 한이 있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은 그 심장으로 인하여 우리의 정기가 살아 뻗쳐오르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호들갑을 떨며 오로지 경제만 살리라며 표를 모아준 우리의 대통령이 혼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경제위기를 풀 수 있는 묘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같이 어려울 때, 끈기있는 선비처럼 올곧은 기상을 키워나가는 데 과거의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래 오래 사십시오.
그래서 언젠가는 고문님의 역사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