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젼은 바보상자?
남연숙
·당진읍 청구APT
·방송작가
직장에 다닐 때, 회사의 지사장이 한국여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던 스위스인이었는데 그의 집에 텔레비젼이 없다는 사실이 회사내에 큰 화제거리였던 적이 있었다. 바보상자를 집안에 들여놓아 가족들을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도였다. 글쎄...?
변변한 교육방송, 위성방송, 케이블TV도 없던 십여년 전이라 그것이 수긍갔을지도 모를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당진지역에 아직 개통되지 않은 케이블방송을 차치하고라도 볼 수 있는 채널이 열개가 넘는다. 이리저리 리모콘을 누르며 뭘 선택해 볼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한다.
나는 요즘 일요일 아침 ‘도전! 지구탐험대’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겪지 못한 문화적 체험을 화면을 통해 대리만족한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 문화, 풍습, 의식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배운다.
또 하나, 우연히 토요일 오전 ‘토요객석’이란 프로그램을 봤다. 지휘자 금난새씨가 나와 연주와 함께 ‘사계’에 대해 아주 재밌고 쉽게 그러면서도 그 깊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해주는 것을 보고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흥미롭게 클래식을 접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프로였다. 그후로 나는 ‘토요객석’ 고정팬이 되었다.
또 다른 하나, 서울에서 한참 뜬다는 연극 ‘어머니’를 은근히 보고 싶었는데 위성방송에서 녹화방송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른다.
텔레비젼이 바보상자라구? 천만에 말씀. 텔레비젼을 바보상자라고 말하는 것은 무궁무진한 정보바다인 컴퓨터를 단순한 게임기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프로를 선택적으로 잘 시청한다면 텔레비젼 만큼 쉽고 편리하게 기쁨과 정보를 주는 매체는 없다.
특히나 문화적 여건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이곳 당진에서 텔레비젼 만큼 문화적 혜택을 주는 것도 없다. 편하게 앉아서 발레를 보고, 오페라를 감상하고, 연극을 보고, 연주회를 듣고, 혹은 그림까지도 감상한다. 문화공연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제한된 이곳 당진이기에 각종 공연 실황을 위성방송을 통해 눈여겨 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텔레비젼은 좋은 프로그램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바보로 만들 것 같은 나쁜 프로도 많이 있다. 문제는 생각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아무 채널이나 돌리면서 유치하고 감각적이고 선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데 있다. 텔레비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텔레비젼을 잘 활용하는 자세와 능력이 있다면 아마도 그 인생은 성공적일 것이다.
몇년전 버스안에서 앞자리에 앉은 두 중년부인이 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난 요즘 하루 일 다 마치고 나서 상감마마 나오는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살어.”
당시에 한참 인기있는 사극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부인은 텔레비젼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잘 선택할 줄 아는 친근하고 지혜로운 아주머니였던 것 같다.


